노동절 연휴라고 해도 은퇴 후에 집에서 노는 삶은 그날이 그날일 뿐이다.
아들네가 연휴를 맞아 캠핑 갔다가 오는 길에 들르겠다고 했다나?
아내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고 처음 집에 오겠다는 것이니
줄잡아 1년 6개월 만이다. 무엇을 먹일까? 이것저것 메뉴를 떠올린다.
뒷마당에서 바비큐나 해 먹자는 나의 의견은 이런저런 이유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이 고기 굽느라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만 할 것이라는
엉뚱한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은 하와이안 바비큐를 사다 먹기로 했다.
하와이안 바비큐라는 그럴듯한 이름만 붙었지 그냥 바비큐 음식이다.
치킨 바비큐며, 소고기 바비큐 등 여러 바비큐가 있는데 하다못해 LA 갈비 바비큐도 있다.
이 음식점이 영업을 잘하는 비결은 푸짐하게 많이 주기 때문이다.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만치 “듬뿍” 담아주는 거로 알려져 있다.
아내가 가서 사 오겠다는 걸, 내가 가겠다고 했다. 나는 아들네가 와 봐야 별로 할 말도 없고,
손주 녀석들도 다 커서 나와는 말을 섞으려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아들을 고대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이것저것 부탁할 게 많이 밀려 있다.
새로 선물 받은 삼성 폰에 넣어야 할 앱도 있고, 카카오를 옮겨야 하고,
여러 기능을 배워야 한다. 자신이 쓰는 컴퓨터에 관해서 물어볼 것도 많다.
아들네가 12시 반에 온댔다고 11시부터 치킨 바비큐를 사 오란다.
가서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일찌감치 준비하라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들네가 온 다음에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보고 가겠다고 버텼지만,
12시를 넘기지 못하고 떠밀려 가야만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내 앞 사람들은 20인분 어치씩 주문 음식을 싸 들고 가는 바람에 한참 기다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큰손주 녀석이 치킨 바비큐를 좋아해서 치킨 바비큐로 사 오라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큰손주는 키가 부쩍 자랐다. 고무줄 늘어나듯 호리호리하면서
키가 늘어났다. 중학교 1학년인데 반에서도 키가 큰 편에 속한단다.
어쩌면 1년 사이에 이렇게 자랄 수가 있는지? 목소리도 변해가고 있었다.
3인분만 사 오라고 하길래 아들네는 아들 형제가 있어서 식구가 넷인데 한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며느리는 배가 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을 거란다.
그래도 그렇지 남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 숫자만큼은 사 와야 한다고 내가 우겼다.
마침 4인분을 사 오길 잘했지 아니면 큰일 날뻔했다. 며느리가 제일 배고파했다.
뒷마당에서 치킨 바비큐를 먹으면서 한참 부산을 떨었다.
부산을 떨다 말고 모두 먹던 바비큐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 왔다.
뒷마당에서는 벌이 덤벼들어서 먹을 수가 없더란다.
늙은 우리 부부는 점심을 거르니까 애들이 먹는 것만 보기로 했다.
하지만 모두 맛있게 먹기에 나도 치킨 바비큐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수선을 피우고 모두 가고 났을 때는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우리도 저녁으로 치킨 바비큐나 사다 먹자고 했다.
오늘따라 날씨가 유별나게 좋을 수가 없다.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더운 날씨인 것 같다.
덥다고 해서 땀이 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밖에서 나뒹굴기 좋은 기온이었다.
바람도 한 점 없다. 나무 그늘 쪽으로 테이블을 옮겨 놓고 앉아 있으니 시원하기가 그지없다.
아무려면 하와이가 이만하랴.
젊었을 때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힐튼 호텔에서 일주일을 묵었는데 베란다에 나가 앉아
있으면 선들바람이 시원해서 천국 같았다. 언제 시간 많으면 다시 놀러 오자고 했었지만,
그 후로는 다 잊고 살았다.
오늘 뒷마당 나무 그늘이 하도 시원해서 옛날 못다 이룬 꿈의 하와이 생각이 난다.
뒷마당 나무 그늘 테이블에서 치킨 바비큐 1인분을 우리 부부 둘이서 나눠 먹었다.
테이블에 바비큐 치킨을 펴 놓자 어디서 날아왔는지 작은 땅벌 두어 마리 덤벼든다.
처음에는 쫓아버리면서 먹으려 했지만 좀처럼 날아가지 않았다.
옛날 내가 어렸을 때 툇마루에 앉아서 찬밥을 물에 말아 김치 반찬 하나로 점심을
먹으려면 어디서 파리가 날아오는지 왼손으로는 파리를 쫓아버리면서 먹던 생각이 났다.
땅벌은 왕파리만 한 게 헬리콥터처럼 치킨 바비큐 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빙빙 돌고
있었다. 두 마리가 치킨 바비큐에 앉으려고 기회를 노리고 슬슬 떠보는 것이다.
땅벌은 수액이나 과일을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고기를 밝힌다는 건 처음 알았다.
파리나 땅벌은 냄새 맡는 코가 유난히 발달해서 멀리서도 냄새를 맡고 달려왔다.
한국 파리는 쫓으면 얼른 도망갔다가 한참 지난 다음에야 다시 오는데 미국 땅벌은
아귀 악착같이 덤벼들기만 했지 도망가려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작은 부채로 때려잡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두 마리뿐이었다.
한두 마리 잡으면 그만이겠지 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두 마리를 잡았는데 다른 두 마리가 날아왔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거다.
날아다니는 땅벌은 한두 마리인데 잡고 보면 어디선가 또 두어 마리가 날아왔다.
아마 일고여덟 마리는 잡았을 것이다.
아내는 불쌍하다면서 잡지 말라지만 파리를 불쌍하다고 잡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파리는 늘 훔쳐먹고 살기 때문에 사람이 쫓아내면 금세 도망갔다가 나중에 눈치를 봐
가면서 다시 덤벼든다.
하지만 땅벌은 어수룩해서, 아니면 도적질을 해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먹어도
되는 줄만 알고 도망치려 들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는 땅벌은 곧바로 얻어맞아 죽고 말았다.
땅벌은 지가 무슨 짓을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리라.
맛있는 냄새 맡고 왔을 뿐인데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는 억울한 입장일 것이다.
두 마리를 잡아 죽이면 잠시 후에 또 두 마리가 날아들고를 반복했다.
나는 날아드는 족적 부채로 때려잡았다. 잡고 보니 일고여덟 마리는 되지 싶었다.
더는 땅벌이 날아들지 않을 때쯤 해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러나왔다.
마음 놓고 치킨 바비큐를 먹어도 된다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의구심도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땅벌일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