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 간의 갈등이 가정 내부로까지 번진
미국 가정을 소개했다.
딸과 한집에서 살던 로렐 호트(57) 씨는 더는 딸과 함께 살 수 없다며 12km 떨어진
곳으로 이사 나갔다. 이유는 딸 샘 호트(32)가 백신 접종을 완강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며 일찌감치 백신을 접종받은 로렐은 자신의 딸 샘에게도 접종을
권유했다.
특별히 딸 샘이 자가면역질환 탓에 코로나19 감염 고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친 설득은 수포로 돌아갔고, 로렐은 “이해할 수 없다. 그냥 이해가
안 된다”며 결국 별거를 선택했다.
지난달 로렐의 남편이자 샘의 아버지인 조엘이 백신 2차 접종 이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것을 본 딸 샘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남편의 장례식에서야 딸을 다시 만난 호트는 “다시 만날 때까지 감염돼 죽지 않기를
기도할게”란 말을 전하고 헤어졌다.
나의 조카(55) 내도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
조카와 와이프 그리고 같이 사는 장모님까지 세 사람 다 걸렸다.
나는 직접 방문하지는 못하고 전화로만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조카 내야말로 무슨 이유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온 가족이 백신 맞기를 거부했다.
백신을 강력하게 거부하더니 결국 온 가족이 다 코로나에 걸린 거다.
조카는 양성이어서 직장에는 못 나가고 집에서 머물러야만 했다.
하지만 장모님(84)하고 와이프(조카며느리)는 병원에 입원했다.
와이프는 증세가 중증으로 들어가면서 산소호흡기를 얼굴에 걸어야만 했다.
딸의 모습을 본 장모는 중증은 아니었지만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음식을 못 먹었다.
치료 도중에 조카며느리에게 중풍이 드려 닥쳤다. 사경을 헤매는 딸을 보다 못한 장모님은
노인이 돼서 코로나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사망했다고 해도 장사도 치르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내년 1월이나 돼 봐야 장사 논의는
이루어질 것 같다.
조카며느리는 병세가 회복되면서 재활 병동으로 옮겼다.
그렇다고 면회를 가 볼 수도 없고 아무나 면회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2주 후부터는 집에 퇴원해서 통원 재활 치료를 받는다. 언어능력은 되찾았지만,
왼쪽 팔다리 기능을 잃었고 짧은 기억력을 상실했다.
조카 내 집은 수리 중이다.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게끔 뜯어고치는 중이다.
2층으로 올라다니는 레일을 놓고 의자를 부착시킨다.
한 번 닥친 중풍은 완전 회복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일어서기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에 조카더러 지금이라도 백신을 맞으라고 했건만, 그의 나이로 보아
내가 하란다고 내 말을 들을 나이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9시 뉴스를 들을 때마다 공포에 싸인다.
한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공간에 들어가려면 방역 패스가 있어야 한다.
이제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려고 해도 방역 패스를 요구한다.
나는 미국에서 백신을 세 번이나 맞았기 때문에 백신 완료증은 가지고 있으나
미국 백신 완료증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한국 전산망에 입력이 되어있지 않아서다.
결국 구청 보건소에 가서 사연을 설명하고 보건소 직원이 전산 입력을 하고 나서야
방역 패스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꼼꼼하고 확실하게 검역 조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코로나 확진자는 계속
늘어나고 중증 환자 역시 증가 추세다. 사망자도 하루에 100명을 넘나든다.
이 모든 것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도 남는다. 나만 불안한 게 아니라 모두 같은 심정이다.
그날그날 뉴스를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전철을 타 봐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그것도 2년째 날고장창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참 가련해 보인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목숨을 얇은 마스크와 백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불안이 해소되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외의 방법은 없다는 게 더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