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는 특별한 날이다.
어려서는 산타가 선물을 가지고 올 것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수일 전부터 크리스마스이브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를 놓고 친구들끼리
작당 모의를 하던 때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꼭 보내야만 하는 것으로 믿고 지내던 때도 있었고
카드를 박스로 사다 놓고 똑같은 메시지를 카드마다 적어가면서 행복해하던 때도 있었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새벽 송을 돌기 위해 준비에 바빴던 때도 있었고,
어느 때는 새벽에 들이닥친 성가대원들을 대접하느라고 부산을 떨던 때도 있었다.
그것도 다 지난날의 일이다.
지금은 특별히 어디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오라는 사람도 없다.
그냥 방에서 창밖만 내다보고 지낸다.
일산 내 오피스텔에서는 코스트코가 직통으로 내다보인다.
오늘은 아침부터 유별나게 손님이 많다. 옥상 주차장까지 꽉 차 있고 미쳐 들어가지
못 한 자동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서 있는 줄이 저렇게 긴 건 처음 보았다.
도대체 무엇을 사려고 저리 밀려드는 것일까?
코스트코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줄은 온 종이 이어졌다.
오후 늦게까지 자동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꼭 들어가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결연해 보였다.
나는 문방구에 들러 프린트를 해 오다가 붕어빵 매대에 들렀다.
코스트코 앞에서 늘 장사를 해 왔으니 붕어빵 아저씨는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왜 코스트코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을 떠는지……
붕어빵 아저씨의 대답은 명쾌하고도 정확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야 하고,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준비도 해야 하고,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냥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내가 늙어서 관심 없다고 남들을 내 마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젊었을 때의 눈높이로 돌아가야 한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물론이려니 와 연말이 다가오는데 얼마나 기대가 클 것이며 잔잔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일 년 중에서 가장 즐거워야 할 클라이맥스 시즌이 아니더냐.
나는 세상 다 살고 나서 이젠 별로 재미나는 게 없는 나이다.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해서 어떤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시청 광장에 거대한 크리스마스 추리가 세워졌을 것이지만 구태여 가서 보고 싶지 않다.
명동에서는 오색 찬란한 네온사인 아래 축제의 분위기로 한창 떠들썩할 것이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선물을 사 들고 걸어갈 것이고
사거리에는 구세군 냄비를 세워놓고 종을 흔드는 사관이 있을 것이다.
명동 성당 언덕엔 조촐한 부유 간을 지어놓고 작은 불을 반짝여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
젊어서 겪어본 그림들을 떠올려 보면서 홀로 크리스마스이브를 펑 일처럼 넘긴다.
산다는 건 한 번뿐이다. 수백억 명이 살고 갔지만 다시 살아난 사람은 없다.
나는 우주의 한 별인 지구에 왔다가 가면 그만이다.
살아있는 한 즐겁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이라 걸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글을 쓰는 시간이 밤 9시가 다 됐는데도 어두운 밤 속에서도
코스트코에 들어가려는 차량은 그칠 줄 모른다.
오늘을 즐기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