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즈음 탈북자들이 올리는 유튜브를 열심히 본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함이 있고 삶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탈탈탈‘이라는 유튜브를 보면서 북한의 실정과 탈북자들의 고초와 처절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탈북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이야기 사냥을 했다.
엊그제부터는 ’강은정입니다’를 보는데 눈물겨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와 딸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버지의 타고난 구수한 입담과 딸의 재치 있는
리드가 어울려서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내가 탈북자들의 유튜브에 빠져들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람은 한번 칭찬을 들으면 계속해서 듣고 싶어진다.
남이 날 부러워하면 부러워할 거리를 자꾸 보여주고 싶다.
강은정의 유튜브는 북한을 탈출한 사람으로서 북한 실정과 남한을 비교하면서
남한의 일상적인 생활상에 감탄하면서 쉴 새 없이 칭찬하고 부러워한다.
남한 사람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부러워한다.
예를 들면 아파트에서 사는 평범한 것을 궁전에서 사는 것 같다느니, 더운물과 찬물이
나온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전기가 24시간 끊이지 않고 공급된다는 당연한 것,
길이 시골길까지도 흙길이 아니고 아스팔트라는 것,
먹을 게 흔하다는 것, 뭐 이런 것들.
이야깃거리가 될 수 없는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것들을 부러워하고 동시에 자신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기 때문에 다시 보고 또 보게 된다.
칭찬을 듣는 것과 부러움을 당하는 것은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누리고 싶어지는
심리적 작용이 일어난다.
어린아이가 칭찬해 주고 부러워해 주면 좋아서 계속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과 같다.
강은정의 유튜브 시청자가 10만 명이 넘었다고 미국 유튜브사에서 은상을 받았다고
상패를 보여주며 방송도 했다. 참 대단한 성과를 이룬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15만 명이 시청한다고 알려 준다.
유튜브 방송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런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성과가 있다고 해서 돈이 쏟아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청자가 백만 명, 천만 명이면 모를까, 아직은 돈 때문에 방송한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이 남한에서 누리는 혜택에 대한 부채심리도 있을 것이고 보상심리도 작용하기
때문에 방송을 계속할 것이다.
유튜브 방송도 중독성이 있어서 강은정 씨도 방송 중독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방송하면서 시청률이 올라가면 갈수록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기 마련이다.
엊그제 방송에서는 북한은 가난하게 살아도 정이 있어서 사탕 한 알도 나눠 먹으면서 산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집 사정이 어떤지 다 알고 서로 왕래한다.
하지만 한국 아파트에서 살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다. 백날을 살아도 서로 모른다.
서로 간에 나누는 정이 없다.
맞는 말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은 서로 정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었다.
남한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정으로 똘똘 뭉쳤었다.
끈끈한 정이나 유대감은 가난에서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은 끈끈하게 서로 얼기설기 엉키고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약자들은 뭉쳐서 몰려다니면서 먹이를 구하고 먹이를 나눠 먹으면서
번식한다.
힘이 센 동물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가기 때문에 동료의 힘을 빌리려 들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난할 때는 서로 뭉쳐야 살아남기 때문에 뭉치다 보면 정을 나누면서 하나가 된다.
하지만 잘살게 되면 서로 뭉쳐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개인주의가 형성된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나가고 이기주의 이론이 발달하면 그럴싸한 변명이 나온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느니, 부모에게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한다느니,
배려문화가 발달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합리화한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동시에 개인주의가 발달해야 한다. 각자가 벌어야 경제발전을 이룬다.
예를 들어서 5식구가 한집에서 살면 한 사람이 벌어오는 것으로도 거뜬히 살아간다.
일하는 노동력이 하나다.
하지만 5식구 중에서 4사람이 각기 일을 하면 차도 4대, 집도 4채 필요하게 될 것이니
소비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당연히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은 적어도 정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를 보거나 문학 작품이 필요한 이유이다.
어느 한 가지를 꼭 짚어서 그것이 옳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인간 사회이고 역사이다.
경제발전과 정이 같이 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상일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대놓고 비방하는 것이 거짓도 아니고 얼마든지 해도 된다.
정말로 김씨 일가를 사이비 종교 교주보다 더 받드는 허무맹랑한 짓거리를 해 대느라고
북한 국민이 토탄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쓸데없는 걱정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염려스러운 것은 북한에서 간첩을 내려보내
자기네 괴수를 비방하는 사람들을 해코지 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이다.
그들은 그런 못돼먹은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찬양하는 것이 진보세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한
결코 허황한 걱정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