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싸구려만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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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끝내고 2주 후부터는 사람들을 만나도 된다고

했을 때였다.

아내와 나는 누님과 함께 고려 짜장면집으로 향했다.

2년여 만에 짜장면 먹으러 간 거다.

누님의 말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유유 식장에서 짜장면을 투고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먹으려 했더니 불어터져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더란다.

그것이 유유 식당 죄가 아니었건만 그래도 맛없는 짜장면을 판 집으로 또 갈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고려 짜장면집으로 갔다.

짜장면을 어찌나 많이 담아 주는지 점심으로 먹은 짜장면이 저녁을 넘기도록 소화가 안 돼서

저녁을 건너뛰고 말았다.

 

짜장면을 많이 준다고 해서 단골손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쪼끔 준다고 해서 안 오는 것도

아니다.

맛이 좋으면 자연히 발길이 모이게 되어 있다.

 

딸은 나더러 싸구려만 찾아다닌다고 흉을 본다.

차를 사도 옵션은 다 빼놓고 기본만 넣어 싸게 산다는 것이다.

물건을 살 때도 세일을 기다렸다가, 아니면 세일만 찾아다니면서 산다고 흉을 본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 봐도 딸의 말이 그른 게 아니다.

나는 물건을 싸게 사면 기분이 좋다.

 

오늘 내가 먹은 짜장면도 가격이 1천 원 싸다는 조건 때문에 맛이 갑절로 좋았던 것 같다.

다음에 가격을 올려 받는다면 같은 짜장면이라도 맛이 오늘 같지 않으리라.

내가 싼 것만 찾아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결국 버리고 갈 것을 구태여 비싸고 좋은 것으로 살 필요가 있을까 해서다.

한때는 물건을 살 때 장만이라는 개념으로 비싼 물건을 그것도 명품으로 골라 사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 살다 보니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명품이라고 비싸게 사서 서랍 속에 모셔두고 쓰지 않느니 처음부터 싸구려를 사서

막 쓰다가 버리고 또 사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나는 싸구려가 더 좋다.

그보다는 세상 다 살고 보니 명품도 시시해졌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무슨 음식은 맛이 어떻다는 것도 알고, 명품 차를 타면 느낌이 어떻다는 것도 알고,

경치 좋은 곳에 가 보면 기분이 어떻다는 것도 알게 된 나이쯤 되면 무엇을 봐도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노인이 되면 새로운 것을 봐도 청소년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고 조용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청소년처럼 엄지를 치켜들고 이라고 외치지 않는다.

늘씬하고 예쁜 여자가 지나가도 젊었을 때처럼 뒤돌아보지 않는다.

늙으면 모든 게 흥미롭지 않고 시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노인도 의욕을 살아있으되 흥밋거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흥밋거리는 건강에 관한 이야기, 장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른 또 하나가 있다면 사랑 이야기이다.

노인들이 모여앉으면 으레 건강 챙기는 이야기뿐이다.

그게 그 이야기여서 들어봤자 무병장수에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서 치사하고 추잡해

보일 뿐인데도 하고 또 한다.

오전 방송도 건강 프로그램으로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한다.

건강 이야기 말고 노인들 사랑 이야기는 귀해서 얻어듣기도 드물다.

원래 사랑 이야기란 재미있고 귀한 거다.

젊은이들이야 가다오다 필이 꽂혀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노인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은

금맥 찾기보다 어렵다. 그래서 귀가 솔깃해진다.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는 잘못하면 유치하고 추잡하게 들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지만

오전 방송으로 노인들의 건강 이야기보다는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 이야기는 젊으나 늙으나 흥밋거리 1순위에 속하는 이유를 이 나이가 되도록 깨우치지

못했으니 그것도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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