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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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뒷마당은 비탈진 언덕이다.

마당은 조금이고 나머지는 비탈이어서 비탈에 기둥을 세우고 우드 데크를 마당처럼 만들었다.

뒷마당 뷰가 막히지 않고 탁 트여 내려다보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비탈 밑으로 소나무, 도토리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한다.

자연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어서 새가 날고 청설모가 오르락 대는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평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봄에는 산벚꽃이 피고 옆집 담장 너머로 개벚지꽃도 피고 언덕 밑에 사과나무꽃도 핀다.

감나무 잎이 나오는가 하면 감꽃도 피고 그 옆에 앵두나무에서도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언덕 비탈에는 산딸기꽃이 무성하다.

봄철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피는 꽃들을 보는 기쁨과 평화가 고맙다.

이 집에서 살기도 오래 살아서 정도 들었지만 이런 집을 만났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1976년 중동 오일 파동으로 한바탕 기름 가격이 치솟더니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물러나고 레이건 대통령이 들어섰다. 레이건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면서 은행 대출 이자를 18%로 올렸다. 치솟은 이자 때문에 부동산이 얼어붙고 말았다.

불경기를 이기지 못한 부동산 업자들이 너나없이 파산하고 말았다.

그때 새로 지은 우리 집도 팔리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가 살던 먼저 집에 웃돈을 얹어주고

바꾸는 형식으로 이사 들어왔다. 1984년의 일이다.

오복을 갖추면 복된 사람이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거기에 하나 더 집복까지 얹었으니

복을 두 곱절로 받은 셈이다.

 

주말이면 주말농장에 가서 텃밭도 가꾸고 근처 산이나 바다도 즐기는 여유로운 생활은

많은 도시인의 꿈이다.

직장, 자녀 교육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느리고 한가한 시골 생활에

파묻혀 보고 싶은 게 도시인의 로망이다.

어느 곳에서 사느냐는 삶의 만족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복작복작 붐비고, 범죄율 높아 문을 잠가도 안심이 안 되고, 밤낮으로 경찰차 사이렌 소리

울리는 지역에서 삶의 질이 높기는 어렵다.

주거비 크게 비싸지 않고, 출퇴근 거리 적당하고, 아이들 학군 좋으며, 범죄율은 낮고,

의료시설 잘 구비되어있는 곳을 찾아서 정한 집이 우리 집이다.

 

한국 TV에서 건축 탐구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은퇴 후, 산으로 들어가 집을 짓는다. 호화롭진 않아도 자연과 어우러진 집으로

창문을 크게 내고 자연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사진 액자 같은 창문이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자연일진대 얼마나 경이로운가.

집이 자연이고 자연이 곧 집이다.

부부가 24시간 붙어서 지내면 지루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자연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집과 자연이 한 공간이다 보니 공간이 넓어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지낸다.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늙어간다.

나는 은퇴 후에 자연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 집이 자연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는데 고향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정붙이고 살았던 곳이 곧 고향인

것처럼, 집도 고향 집이 있는데 여러 번 이사 다녔어도 기억에 잠재해 있는 집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집이 고향 집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뒤처진 생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21세기 신개념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면 집이란 땅에다가 기둥을 박고 세운 집이라야 올곧은 집이라고

하겠다. 땅이 없이 공간만 존재하는 집은 집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걸어서 가는 것과 버스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장단점이 있다고들 하지만 버스 타고 하니 돌아오는 것보다 이것저것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게 나는 마음에 든다.

지금 세상에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다고 해도 아무려면 집밥만 하겠는가?

땅에 기둥을 박고 지은 집은 집밥과 같아서 밥상의 기본은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집이 내 생애에 세 번째 이사한 집인데 가장 오래 살았기도 하지만 모든 추억이

서린 집이기도 해서 고향이나 매 한가지이다.

 

한 집에서 40년을 살다 보니 이젠 어디로 이사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남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한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는 것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인기 인형을 사달라고 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 줬던

가베이지 패치 돌(Cabbage Patch Dolls)’이 아이 방에 그대로 있는 것도,

뒷마당에 심은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달릴 때면 감나무 하나만큼은 잘 심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이 집이야말로 정말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디 나갔다가 나도 모르게 자동차가 알아서 집으로 향할 때면 나도 놀란다.

신발은 모양보다 편해야 좋다는 말에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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