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1시가 아직 10분 남았다.
맥도널드 주차장에 주차한 차들이 그런대로 있었다.
차와 차 사이에 빈자리가 있기에 끼워 넣었다.
차창 너머로 오른쪽에 서 있는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미국 남자 노인이 운전석에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다.
왼쪽에 서 있는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어떤 미국 남자 노인이 운전대를 잡고 우두커니 앉아있다.
나는 차 문을 잠그고 맥도널드 매장으로 걸어갔다.
젊은이가 매장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라고 손으로 인사하듯 안내한다.
고맙다고 한마디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 매장은 늘 그러하듯이 자리가 텅 비어있다.
의자와 테이블이 튀는 색상과 캐주얼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노란색 의자와 얼룩말 같은 색을 입힌 의자가 섞여 있다.
인테리어가 바뀌어 있어서 조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튀는 디자인과 색상이 틴에이져에게나 어울릴 것 같아 보였다.
예전에 우리가 즐겨 앉던 자리로 가 보았다.
둘이 마주 보며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던 테이블이었는데 지금은 한 사람은 창문을 등지고
앉아야 하고 상대는 창밖을 마주 보고 앉는 형식이다.
둘이서 같이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테이블을 찾아가 자리를 잡았다.
시계를 보았다. 약속 시간 10분 전이다. 전에도 그랬다. 10분쯤 전부터 기다렸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남자 노인 두 사람이 한국 사람 같아 보였다.
노인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거로 보아 그도 내가 한국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자리 잡고 앉아서 친구를 기다렸다.
두 노인은 달랑 시니어 커피 한 컵씩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한국말이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씩 돌아보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때서야 생각났다.
“아차, 내가 마스크 쓰는 걸 잊고 있었구나. 어쩐지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주더라.”
이미 때는 늦었다. 그냥 앉아서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을 취해보려고 해도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다.
내가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아내는 휴대폰을 가지고 가란다.
나는 잠깐 갔다가 올 건데 휴대폰까지 지니고 갈 게 못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연락할 게 있으면 전화를 걸어야 하니까 들고 가라는 걸 그냥 왔더니 당장 아쉽다.
“노인네 고집은 못 말려……“ 아내의 핀잔이 귓전에서 울린다.
우두커니 앉아서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면서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짐작하건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집으로
여러 번 전화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머쓱했지만, 모르는 척 눈 딱 감고
내 차로 돌아왔다. 30분이 지나도록 왼쪽 오른쪽 차가 그대로 서 있다.
차 안으로 들어와 앉으면서 오른쪽 차 안을 보았다. 아까 그 노인이 그대로 앉아있다.
왼쪽 차를 보았다. 역시 아까 그 노인이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앉아있다.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이렇게 낮 시간을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휴대폰부터 열어봤다.
분명 ’시간을 맞춰 나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기대했건만 아무런 문자도 없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만나보았느냐고 묻기에 바람맞은 이야기를 해 주면서 필경 애인 집에 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내는 ”설마 그럴리야 있겠어?”라고 말한다.
친구 부인은 수년 전에 저세상으로 갔고 지금은 동년배인 애인과 열애 중이다.
친구는 부인이 죽고 한동안 고통스러워했다. 아내 없는 빈집에 혼자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누구도 외로움과 슬픔을 대신해 주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친구라고 왜 고민이 없었겠는가. 머물러 있기보다는 한발 내디뎌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거냐는 문자를 보냈더니 회신이 왔다.
약속한 날짜가 내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화내지 말고 내일 다시 나오란다.
‘가만있자.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수요일 저녁 8시에 문자를 보내면서 “내일 1시에 만나자”라고 했다.
친구는 열어보지도 않고 있다가 목요일 아침 8시에 회신을 보내왔다.
“내일 1시 좋다”라고 했다.
내가 말하는 내일은 목요일이었고 친구가 열어서 읽어본 내일은 금요일이었다.
할 수 없이 금요일 1시에 어제처럼 똑같은 주차 자리에 차를 세우고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마스크만 썼을 뿐 모든 게 어제와 같은 반복의 일상이다.
친구가 오기에 ‘뭐 하느라고 밤새도록 문자도 보지 않았느냐‘라고 물어보았다.
모처럼 애인 집에 가 있는 바람에 전화는 꺼 두었단다.
친구의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다소 기분이 언짢았지만, 마음이 곧바로 회복되었다.
애인이 생겼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나도 젊어서 연애할 때는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젊었을 때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에도 그런가?
모르기는 해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젊었을 때보다 더 조급하겠지…….
애인을 위해선 일상을 접어두고, 휴대폰도 꺼놓고, 오로지 애인에게만 몰입하는 게 눈에 보인다.
세상만사 최우선권은 애인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