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어딜 가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게 백세 시대란 말이다.
과연 백세 시대는 열렸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백세 하면 김형석 교수를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 요즈음 그분은 철학 교수보다는
장수 비결의 소유자로 더 알려져 있다.
그분의 장수 비결 유튜브를 보면 여느 백세 노인들과 다를 게 없다.
LA 다운타운 벙커힐에 사는 올해 108세의 모리 마코프 옹을 보자.
마코프 옹은 100세에 첫 개인전을 가졌다.
헐리웃에서 가전제품 수리점을 운영하던 시절, 틈틈이 버려진 고철들로 조각품을 만들었는데,
어느 날 한 갤러리 주인이 ‘작품’들을 보고 깜짝 놀라 전시회를 주선한 것이다.
그날 이후 마코프는 회고록 집필을 시작했고, 103세에 “계속 숨쉬기”(Keep Breathing)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마코프 옹은 지금도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쓴다.
때로는 한밤중에도 무슨 생각이 떠오르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끄적이는데
그렇게 쓴 글이 매주 30~40페이지나 된다고 한다.
장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일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V 프로그램 ‘인간 시대’에서 보여주는 백세 넘긴 할아버지 역시 꾸준히 농사일에 몰두하고 있다.
백세 넘긴 할머니 역시 온종일 이일 저일 하다못해 설거지까지 쉬지 않고 꼼지락댄다.
남의 말 할 것 없다.
나의 외사촌 누님은 아흔이 넘었다. 엊그제 전화했더니 전화만 하지 말고 만나잖다.
오미크론 코로나가 무서운 나는 만나자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통화만 했다.
누님보다 젊은 나는 코로나 때문에 실제로 나가 다니기 싫다.
외사촌 누님이 두 분 있는데 둘이 동갑이면서 고등학교도 동창이다.
누님 A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골골했다. 친척 집에 가면 어른들이 있거나 말거나
누님은 힘이 든다면서 앉아 있지를 못하고 누워서 말 참견을 하곤 했다.
어른들도 누님 A의 건강 상태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누님 B는 건강하고 공부도 잘했고 빨빨대고 다니는 바람에 따르는 남학생도 많았다.
아흔이 넘은 지금 누님 B는 단칸방에 누워서 TV만 보면서 지낸다.
관절 때문에 걷지도 못하고 기억력도 쇠퇴해서 옛것만 기억한다.
누님 A는 아직 팔팔하다. 연하 남편 밥해주느라고 바쁘다.
부인 없는 남자는 끼니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서 일찍 죽는다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이 오래 살아야 남편 밥이라도 해 줄 수 있다고 더 열심히 건강에 신경을 쓰며 산다.
오래 살고 못사는 건 타고난 운명이라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찍 죽고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수명은 건강과는 관계없이 관리하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몸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미리 조심하면서
철저히 관리하니까 결국에는 오래 산다.
노년에 나타나는 ‘평준화’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60대에는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외모가 평준화되고, 70대에는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지성이 평준화되며, 80대에는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재산의 평준화, 그리고
90대에는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별 차이가 없는 목숨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평준화만이 아니라 나이 따라가면서 부러움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서는 장난감 많이 가진 동무가 부럽더니 학교에 가면서 공부 잘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젊어서는 애인 있는 친구가 부러웠고 결혼 후에는 돈 많은 사람이 부러웠다.
늙고 보니 병 없이 오래 사는 사람이 부럽다.
장수도 관리 잘하면 되고 건강도 관리 잘하면 되는 것이니 돈 드는 일은 아니다.
무엇이든 철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