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는 봄날처럼 화사하고 따스하다.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춥다고 움츠리고 다녔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반팔 셔츠로
갈아입었다.
봄볕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햇볕을 쪼이면 기분이 좋다.
같은 태양인데 어쩌면 계절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지
같은 공기임에도 싸늘한 공기가 있는가 하면 신선한 공기도 있는 것과 같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은 유행가를 좋아하셨다.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지……”
그분의 애창곡 19번 ‘애모’의 가사다.
여기서 그대란 예수님을 일컷는다.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성 김 대사의 부인 정재은 씨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 했을 때 백악관 만찬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는데
백악관에서 만나본 아베 총리는 사람이 커 보이더라. 실제 인물보다 1,5배 더 커
보이더라는 것이다. 실제 사람이 크다기 보다는 그 사람의 인품이 커 보이더라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사람이 품격이 있으면 그분 앞에서 나도 모르게 조아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시각적 위엄도 있을 것이어서 로마 교황님이 거대한 관모를 쓰는 것도
시각적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옛날 임금님이나 벼슬길에 오른 분들은 자리에 맞는 관모를 쓰는 이유도 다 그래서였다.
시각 다음에는 청각적 효과도 활용했고 주변 사람들이 그분을 떠받드는 것을 보고
누구라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알게끔 할 수도 있다.
당장 북한의 김정은은 주변 사람들이 그 앞에서 꾸뻑 죽어가니까 어리석은 국민들은
멋도 모르고 따라서 죽는 시늉이라도 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가짜이기 쉽다.
진실은 그분의 인품이 위대하면 누구나 그분을 따르게 되어있다.
안창호, 유석모 선생이 시각적 청각적 효과 때문에 사람들이 존경했던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초라하게 차려 입으셨지만 누구라도 그분 앞에 서면 작아든다.
각고의 노력만으로 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나기도 해야 하고 끝없는 노력도
겸비해야 하고 시대를 타고 나야 하기도 한다.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어서 어디로 가는 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깨우치고 가르치고 과학이 발달하고
별별 일을 다 겪었다.
그중에 한 가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우리는 모두 죽는 다는 것과 죽으면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사실뿐이다.
악을 쓰고 뛰어봤자 죽는 건 매 한가지이고 가져갈 수도 없다는 것도 같다.
그냥 오늘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가장 평범한 삶이 가장 좋은 사주라는 말도 그래서 태어난 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