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치고는 엄마가 자식 사랑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사랑이 있을까?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동물도 그렇다. 어떠면 식물도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는 안 먹겠다는 아이를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쫓아다니면서
숟갈로 떠서 입에 넣어주곤 했다.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듣지 않았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는 먹을 게 없어서 모두 굶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게 없나 하고 두리번대는 자식을 볼 때마다 엄마의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 게 많아서 어떻게 해서라도 정크푸드는 먹이지 않으려고
고민하는 시대이다. 지금은 아이가 너무 먹어서 걱정이지 안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내는 멀리 산라몬까지 달려간다.
산라몬은 집에서 40마일로 30분이나 달려가야 하는 거리다.
가는데 30분 오는 데 30분 걸린다.
일주일에 월,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산라몬에 달려간다.
막내딸의 큰애가 유치원 파하는 시간에 맞춰서 픽업해서 댄싱 클럽에 바래다주기 위해서다.
가서 기다리기도 하고 군것질 거리라도 먹여야 하고 댄싱 옷 갈아입히기도 해야 하니까
이럭저럭 두세 시간은 잡아먹는다.
댄싱 클럽에 데려다주면 막내딸이 직장 끝나고 집에 가면서 큰애를 픽업해 간다.
간단한 일거리지만 시간도 맞춰야 하고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이 일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통과의례로 아이가 중학교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이다.
이런 일은 노인에게 귀찮은 일이다. 귀찮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일 같지 않은 일 때문에
자신의 스케줄에 구멍이 나기도 하고 새로운 스케줄을 잡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그렇고.
어느 날 시아버님은 자식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아주 먼 옛날 어느 고을에서 있었던
효자상 예화를 들려주셨다. “어느 고을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었는데 너무나
가난했다. 아들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팔아 근근이 살아갔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서
좁쌀로 두 사람 밥을 지어서 아들에게 반은 아침으로, 반은 점심으로 허리춤에 채워주었다.
아들이 ”어머니 밥은?” 하고 물으면 내 밥은 솥에 있다고 하시며 많이 먹고 나무하러
가라 하셨다. 그런 줄로 알고 아들은 열심히 나무를 해서 장에 갔다 팔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더운 날씨에 얼마나 고생 했느냐며 우물에 가서 시원한 물을 떠다가 아들의 발과
다리를 씻겨주었다.
어느 날 아들이 고을에서 효자상 후보에 올랐다. 고을 원님이 포졸을 시켜 그 집을
염탐해보라고 명령했다. 그날도 아들은 나무를 팔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마당 한쪽 툇마루에 아들을 앉히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아들 발과 다리를
씻겨주니 아들은 “아이 좋아 아이 시원해” 연발하며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주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아들을 쳐다보면서 즐거워했다.
이 광경을 본 포졸은 저런 못되고 불효막심한 아들이 있나 하면서 화가 났다.
원님에게 고하기를 천하에 불효한 아들이라 벌을 줘야 한다고 고했다.
원님이 한참 생각하더니 그 아들에게 효자상을 주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들 발과 다리를 어머니에게 씻기게 했기에 어머니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보람을 드렸다는 것이다.
나무꾼 어머니의 마음이 아내의 마음인 것 같다.
자식에게서 받는 행복보다 주는 기쁨과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막내딸이 알아서
제 어미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닐까?
거기까지 헤아리는 딸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