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점심을 먹으러 인앤아웃 버거집에 갔다.
실내 식탁이 허용됐다지만 그래도 께름칙해서 아웃도아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아웃도어 테이블이 널찍널찍하게 떨어져 있어서 코로나19에 안전해 보였다.
파라솔을 이고 있는 둥근 테이블이 6개 있는데 그런대로 깨끗했다.
우리야 늘 먹던 대로 햄버거와 후렌치 후라이에 마시는 건 그냥 맹물이다.
햄버거도 오래간만에 먹었더니 맛이 그만이다.
옆 테이블에는 50대쯤 보이는 백인 남자 중년이 동양인 할머니를 모시고 와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적어도 90은 가까워 보였다.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중년 남자가
햄버거를 사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참 착한 아들이구나 생각했다.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햄버거 먹으러 온 것이 분명했다.
한참 있다가 아들이 햄버거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둘이서 잘 먹겠구나 했는데 할머니는 안 먹고 아들만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효도하는 아들이 부러웠다.
‘인종은 다르지만 백인 아들일망정 잘 길러놓으면 한국인 아들보다 낫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노인 아파트에서 사는 누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낮에 본 효도
이야기를 꺼냈다.
누님이 듣고 있더니 한마디 던진다.
“얘! 그 사람 아들 아니다. 엄마가 햄버거 먹고 싶다고 하면 아들 같으면 햄버거 사다가
던져주지. 모시고 나가서 안 먹어. 아들은 제 자식들은 데리고 나가서 사 먹지만 엄마는
안 모시는 거야.
그 남자는 소시얼 워커야. 돌봄이란 말이다. 사회보장국에서 고령자에게 돌봄이를 보내주는데
일주일에 3일, 하루에 4시간씩 도와주는 거야. 한 달에 80시간을 넘길 수 없어.
돌봄이가 자기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에 할머니를 데리고 나왔을 뿐이야.”
누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듯하게 들렸다.
노인들만 모여서 사는 노인 아파트에서 이런저런 사례를 보고 하는 이야기이니 신뢰가 갔다.
그때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그게 일종의 비지네스라는 것을.
백인 남자는 근무 중이었다.
누님은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말했다.
할 일 없이 창밖만 내다보는 노인을 차에 태워서 밖앗 나들이를 시켜주는 것이 어디냐.
돈 없는 노인을 위해서 아들이나 딸이 시간 없애가면서 ‘작은 효도’일망정 해 주겠니?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모두가 바쁘니까 비즈니스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 사회보장국에서 기능적으로나마 ‘효도’를 해 주는 것이 고맙기도
해 보였다.
세상이 바뀌다 보니 참 이상한 효도도 다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