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학교에 간 손자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학교에 왔는데요. 바이오린 레슨 노트를 빼먹고 왔어요. 같다주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냐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바이오린 레슨 노트를 스탠드에 끼워놓고 연습하다가 그냥 자버렸단다.
아침에 바이오린만 들고 왔으니 오후 특활 시간에 가면 레슨 노트가 없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알았다 내가 갖다 주마’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점심도 가져오란다.
부랴부랴 손주네 집으로 달려갔다.
콩나물이 그려진 뮤직 노트가 악보대 위에 그대로 있다.
악보 노트를 접어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딸이 싸놓은 점심이 있다.
녹색 점심 빽에 샌드위치와 펩시콜라 한 캔이 들어있고 간식 그래놀라 바도 있다.
학교에서 사 먹는 점심은 뭐가 모자라는지 딸은 손수 싸서 보낸다.
악보와 점심 빽을 찾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손주 녀석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맨 날 컴퓨터 게임만 좋아했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엄마는 저보다 일찍 직장에 가고 학교는 혼자 알아서 가야하는데 애가 야무지지 못해서
이것저것 잊어먹는 게 많다.
저래가지고 중학교며 고등학교에 가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 아들이 손주처럼 학교에 다닐 때가 생각난다.
아들은 아침에 혼자 일어나 준비 다 하고 아침도 안 먹고 학교에 갔다.
그 당시는 등교 버스가 있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점심도 학교에서 거저 주는 점심을 먹었다.
지금은 등교 버스도 없고 학생들 점심도 돈 내고 사서 먹어야 한다.
내가 한창 젊었을 때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학교에 가는 소리다.
그때까지도 아내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누워있었다.
나는 어린 아들이 혼자 챙겨들고 학교에 가는 게 안타까워서 아내더러 나가보라고 하면
아내는 싫다고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아들은 한 번도 학교에 태워다 주고 태워오고 한 적도 없다.
지가 알아서 다녔다. 심지어 자동차 운전도 안 가르쳐주었다.
어느 날 운전면허 따 왔다면서 헌 차는 자기가 몰겠다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포드 에스코트 헌 차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내내 그 차를 끌고 다녔다.
대학에 다닐 때도 돈도 안 들었다. 거기에 비하면 딸들은 돈 꽤나 들었다.
아들은 집에서 가까운 UC Berkeley에 차를 몰고 다녔다.
아들네는 진손주가 둘인데 모두 착해서 말썽부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들도 손주들도 한 번도 속을 썩여본 일이 없어서 사내아이들은 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딸네 손주는 다르다. 이것저것 시키지 않는 일만 찾아다니면서 저지른다.
손주 녀석이 말썽을 많이 부리다 보니 정이 들었다.
어찌된 일인지 말썽부리는 손주가 더 마음이 간다.
학교 교무실에 갔다. 교무실 문짝에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이게 뭔가 하고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날 장식을 해 놓은 것이다.
커다란 붉은 하트에 ‘프락토’ 초등학교 교무실 교직원이 최고라고 자랑하면서 신문에
실렸던 기사들을 모아놓았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넒은 교무실에 교직원은 달랑 한 사람뿐이다.
‘벌져‘ 점심 가져왔다고 했더니 받아든다.
나는 교무실에 갈 때마다 놀란다. 교무실 직원은 학생 이름만 대면 몇 학년 누구라는 걸
단박에 안다.
학생이 우리 손주 하나만이 아닐 터인데 그 많은 학생(500 여명)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교직원에게 뮤직 노트와 점심 빽을 건네주었다.
교직원은 선생님에게 ‘벌져’ 점심이 교무실에 있다는 걸 알려준다.
교직원은 곧바로 교무실 창문 밖 테이블에 학생들이 찾아가야 할 물건을 올려놓았다.
우리 손주만이 아니라 바이오린을 안 가지고 등교한 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다.
어떤 녀석이 슬슬 걸어오는 꼴로 보아 지 물건을 찾으러온 것 같아 보였다.
우리 손주도 저렇게 걸어오겠지 하는 그림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