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은 아이가 셋이다.
딸 둘에 아들이 하나인데 6살, 4살, 2살이다
딸 둘을 낳았기에 이제 그만 낳나보다 했더니 덜컹 아들을 낳았다.
요새 세상에 아이 셋 낳는 집도 그리 흔치 않다.
하나나 둘 정도인데 막내딸은 셋이나 낳다니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나도 셋이나 길렀으니……
막내딸은 고만고만한 아이가 셋이나 되는 주제에 냉장고도 없이 산다.
지금 같은 세상에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사느냐 하겠지만 내 딸은 그렇게 산다.
몇 해 전에 부자 동네에 새집을 사서 이사 가면서 냉장고도 새것으로 들여놓았다.
삼성이나 LG로 사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미국산 웨스팅하우스를 사더니 2년 만에
고장이 났다.
수리하는 사람을 불렀는데 부품을 주문해야 한단다.
2달인가를 기다려서 부품이 왔는데 맞는 부품이 아니란다.
그러는 사이에 냉장고가 없어서 조그마한 미니 냉장고로 아기 우유나 넣어두고 산다.
다시 부품을 기다렸는데 얼마 후에 통지가 왔는데 부품이 없단다.
결국 새 냉장고로 교체해 주겠다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작년 11월부터이니 벌써 냉장고 없이 사는지 7개월이 넘었다.
바꿔주려거든 빨리 바꿔주지 왜 이리 질질 끄느냐는 질문에
막내딸네가 가지고 있는 냉장고는 단종된 모델이어서 전국 각처에 재고를 뒤지는 중이란다.
같은 모델로 바꿔주려고 재고를 찾아보는 중이란다.
이거야 원 냉장고 교체해 주기를 기다리다가 시원한 물도 못 마시겠구나.
미국은 매사 느려터진다. 한국 사람 성질로는 기다릴 수가 없다.
나 같았으면 한바탕 해대고 내 돈 주고라도 새 냉장고 들여놓겠건만 막내딸은 악착같이
기다린다. 막내딸의 악착같은 성격이 끝내 박사학위도 받은 저력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학교가 방학이 돼서 선생들도 집에서 논다.
선생 직업이 좋은 까닭은 여름 두 달은 놀고먹기 때문이다.
막내딸은 선생은 아니고 부교장이어서 사무직이지만 선생과 같은 스케줄이어서 같이 논다.
토요일 아침에 아이들을 다 태우고 샌디에이고에 간다고 나섰다.
두 달 전에 새 차를 샀는데 큼지막한 GMC 유콘으로 끌고 왔다.
나는 겁이 덜컹 났다. 비싼 휘발윳값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기름 많이 드는 차를 몰고 샌디에이고에 다녀오겠다니 기름값 꽤 들겠구나 했다.
딸은 한술 더 떠서 렌트카 해서 다녀올 거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비싼 기름값에 엑스트라 렌트비까지 더하겠다고?
갔다 왔다 교통비로만 1천 달러가 넘겠구나?
샌디에이고엔 왜 가니?
6살 먹은 큰딸이 전국 댄싱 경연대회에 나간다는 것이다.
그까짓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댄싱을 잘하면 알마나 잘한다고 식구가 신이 나서 그 멀리
샌디에이고까지 달려간단 말이냐.
학교가 방학이니까 이통에 LA 디즈니랜드에도 들렀다가 오겠단다.
딸네 아이들이 디즈니랜드에서 즐겁게 놀기에는 아직 어리다.
그런데도 굳이 데리고 가겠다는 것은 어른들이 즐기겠다는 것이지 어린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지 않은가?
하긴 우리도 그랬으니 딸네 흉볼 것도 못 된다.
우리도 애들이 어렸을 때 뻔 찔 디즈니랜드로 달려갔었다.
하다못해 멀리 후로리다 디즈니 월드까지 갔었으니 우리한테서 보고 배우며 자란 딸이
이상한 것도 없다.
아이 셋 데리고 다섯 식구가 디즈니랜드에서 놀자면 돈깨나 들 것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냉장고나 사지.
말해 봤자 듣지 않는 딸의 막힌 귀는 내 귀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