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알고 싶다’
심사평 소설가 전경애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많은 분들이 훌륭한 작품을 보내주셨다.
절묘한 묘사가 눈에 띄는 우수한 작품들이 많아 작품 선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제출된 작품 중에서 소설의 본질에 충실하고 완성도가 높은 장편 소설 ‘소년은 알고 싶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소년은 알고 싶다’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아픔을 담담하게 승화시켜 소설화한 작품이다.
‘한 인간의 삶 속엔 역사가 녹아있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는 한국전쟁 후 미국에 이민하여 큰 성공을 거두지만 평생 어머니를 그리며
잠을 못 이룬다.
그러나 성공한 미국인으로 변신한 후에도 주인공은 평생 그를 버리고 가출한 어머니의 비밀을
캐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 비밀을 알고 난 순간 그것은 주인공의 비밀로 자리를 바꾸고
그대로 밀봉되고 만다.
기승전결이 뚜렸한 소설다운 소설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건필을 빈다.
‘소년은 알고 싶다’ 줄거리
주인공인 ‘나’는 어려서 할아버지의 사건으로 인해 가난을 겪고, 어머니가 떠난 이후로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가난과 성공, 한국과 미국, 소년과 노년이라는 간극을 넘어서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나’를 다룬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운명이라고도 하고 숙명이라고도 하는 게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변화를
거치면서 어떤 결과를 낳는 지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미국 교표인 관계로 미국 교표 이야기라면 자신 있게 쓸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작가의 어렸을 때 이야기였으므로 작가만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노인인 관계로 노인 이야기에도 자신 있게 써냈다.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목매 자살한 것을 처음 발견한 때부터 시작한다.
화자가 6살 되던 해에 보았던 할아버지는 정말 늙었고 흰머리에 할아버지 같았다.
하지만 화자가 직접 늙어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어린아이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과장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 길도 더 넓게, 언덕도 더 높게, 노인도 더 늙게 기억한다.
나이가 든 다음,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겨우 요걸 가지고? 라는 생각이 든다.
화자의 할아버지 역시 무척 늙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살았는데, 실제로 화자가 늙어가면서
겪어보니 당시 60세도 안 된 할아버지는 늙은 것도 아니었다.
늙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젊었으나 어린 화자의 눈에는 무척 늙어 보였다.
하긴 반세기 전의 삶이라는 게 가난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늙은 것도 사실이다.
화자는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던 해 12월에 태어났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25살인 과부 엄마와 시아버지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갈등의 원인은 시아버지가 지닌 여자를 대하는 철학관이 문제였다.
시아버지인 화자의 할아버지는, 그때 사회상이 그러하기도 했지만, 재산 좀 있는 집안에서는
작은집 거느리는 것을 예삿일처럼 생각했고 기생집 드나드는 것을 당연시했다.
할아버지 역시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다가 다 탕진하고 패가망신 길로 들어섰고
결국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 바람에 엄마는 집을 나갔고, 엄마가 없는 화자 운명의 터닝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화자는 엄마가 그리워서 잠을 못 이룬다. 고모들의 말로는 엄마가 팔자를 고치려고
도망갔다고 했다. 새로 만나 같이 사는 남자는 이미 전처에게 딸이 넷이나 달린
군인 중사였다. 속아서 살면서 딸을 연달아 낳았다.
드디어 화자가 중학교 1학년 때 엄마를 찾아 양구에 가서 만나 보았다.
엄마의 남자는 술중독자였다. 술만 마시면 엄마를 팬다는 말도 듣는다.
억울하고 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해병대에 입대해서 엄마를 괴롭히는 그 인간을
넉 되게 패 주겠다고 벼른다.
화자가 군에 나가 첫사랑에 빠지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으므로 스스로 포기하는
시련과 괴로움도 겪는다.
큰고모 집에서 얹혀살던 누나는 집을 나가고, 결국 외국인 식당에서 일하다가
미군과 결혼하고 미국으로 가면서 화자도 이민 간다.
그때가 화자나이 24살, 젊은 청년이었다. 과일나무를 토양이 다른 땅에 옮겨 심으면
열매의 수확이 다르듯이 화자의 운명도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다.
10년이란 고생 끝에 공부를 마치고 미국 여자인 제시카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결혼한다.
처음 겪는 미국 문화를 그렸는데 이점 역시 자신 있게 기술했다.
화자는 미국인으로 변신한 인생을 산다. 이로써 다시 한번 운명의 터닝 포인트가 일어난다.
2007년 큰고모의 장례에 참석차 처음 한국을 방문한다. 30여 년 만에 찾아온 한국이다.
한국은 많이 발전해 있어서 어딘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자동차를 렌트해서 양구 이모를 찾아갔다. 늙은 이모에게서 엄마의 소식을 듣고 엄마를
찾아 횡성으로 떠난다. 만나본 엄마[당시 74세]는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늙어버린 할머니 같은 엄마를 대하면서 인생의 허탈함을 느낀다.
은퇴하고는 나이 일흔에 아내 제시카와 함께 마지막 여행자로 한국을 택했다.
한국에 온 김에 양구를 찾아 갔다. 이모는 돌아가셨고, 이모의 큰딸이 군인백화점이란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이종사촌 누님인 큰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스토리를 다 말해버리면 재미가 없겠기에 마지막 장면은 남겨둔다.
엄마의 비밀을 알고 난 다음 엄마의 비밀은 화자가 비밀로 자리를 바꾸었을 뿐,
비밀을 고대로 밀봉되고 만다.
엄마는 자식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스스로 숨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