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서 잘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해 본 건데 올해 오이를 심은 건 잘한 일이다.
오이는 간단해서 심어놓고 물만 주면 된다.
넝쿨이 올라가는 방향을 잘 잡아주면 땅을 많이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맨땅도 아닌 커다란 화분에다가 심었다.
내가 오이를 잘 심었다고 하는 까닭은 오이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야 장 보러 다니지 않으니까 오이값이 올랐는지 내렸는지 잘 모르지만, 주부들이나
신문보도를 보면 많이 올랐단다.
오이를 길러보니 쑥쑥 잘 자라는 게 오이 넝쿨이다.
물만 주는데도 하룻밤 자고 나면 한 뼘도 넘게 자라났다.
오이가 싹이 나서 자라고 오이가 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두 달이다.
두 달 자라서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한 넝쿨이 네다섯 오이를 매달고는 그만 시들어버린다.
줄기가 늙어서 더는 열리지 않는다.
나는 4월에 심어서 한 차례 따먹고 6월에 다시 심었다.
두 번째 심은 오이 넝쿨에서 신나게 따 먹는 중이다.
매일 한두 개씩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농사 수확하는 재미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올해는 시험 삼아 오이 이모작을 시도해 보았는데 다음 해부터는 오이는 이모작으로
굳어지게 생겼다.
상추야 심으면 금세 자라서 따먹는 건데 왜들 안 심는지 모르겠다.
내가 일산 오피스텔에 두어 달 머물 때면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상추를 심어 먹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했다.
시골 장에 가 보면 상추 길러 먹으라고 박스에 심어놓고 파는 묘목상도 보았다.
상추 정도야 묘목을 사다가 심을 필요도 없다.
그냥 씨 뿌리고 물주면 자라나는 간단한 식물이다.
그뿐인가 검은 비닐봉지에 흙을 채운 다음 봉지에다가 상추를 심어도 된다.
비닐봉지 옆구리에 구멍 여러 개를 내놓고 상추씨를 심어놓으면 검정 비닐봉지가
온통 상추 덩어리가 된다.
햇볕 잘 드는 곳만 있으면 얼마든지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
내년에는 옥수수도 심어볼 생각이다.
생생정보 프로그램을 보다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 따다가 쪄 먹는 걸 보니 나도 먹고 싶다.
직접 옥수수를 길러서 딴 다음 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침이 꿀꺽 넘어간다.
우리 집 뒷마당 경사진 곳에 시험 삼아 심어 볼 생각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뒷마당에 심어놓은 채소를 보며 그들과 대화한다.
호박이나 오이 잎이 까불어지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목이 마른다는 호소다.
진보라색 가지가 줄기 끝자락에 매달려 커가면서 줄기가 부러질 것처럼 휘어진다.
줄기를 받혀달라는 애달픈 간청이다.
내가 채소 식물의 서투른 표정을 금방 알아차리는 까닭은 식물이 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 뜻에 귀 기울이기 때문이다.
딸만 한 오이가 여러 개 달렸다. 다 큰 오이인데도 따지 않고 놔두면 점점 더 커진다.
시장에 내다 팔아도 될만한 사이즈가 된다.
아내더러 물어보았다. 오이 속 배기나 담가 먹자고 했다.
아내는 계산이 따로 있었다.
주말에 아들네 집에 갈 때 오이 속 배기를 담그다가 주겠단다.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김치 담그다가 주는 거 안 좋아한다던데……
우리 며느리는 아니란다.
며느리 마음이라는 게 다 똑같지, 시어머니 좋아하는 며느리도 있나?
우리 며느리가 일본 여자가 돼서 김치 담글 줄 몰라서 사다 먹기 때문에 그렇지 않단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만, 그래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게 며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