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날씨답지 않게 며칠째 밤낮으로 무덥다.
낮엔 햇볕이 뜨거워서 그늘을 찾게 되고 밤에는 창문을 다 열어놓아도 후덥지근해서
잠을 이룰 수 없다.
마치 한국의 여름밤 같다.
나는 올여름을 내 집에서 보낸다.
뭐 집에서 보내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지난해에는 한국 일산에서 보냈다.
일산에서 여름을 보낼 때와 집에서 보낼 때는 여러모로 다르다.
일산에서는 빌딩 숲속에 우뚝 선 15층 건물 작은 오피스텔에 갇혀서 산다.
도시 속 콘크리트 건물에 있으면 세상이 삭막해 보인다.
보이는 것마다 각진 네모난 건물이고 사람과 자동차로 찌든 것 같은 세상이다.
당연히 삶이 각박해서 서로 마주쳐도 인사도 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미국에서 사는 집은 도시에 있지만 내게는 시골집 같다.
시골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도시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러나 조용하고 한적한 게 시골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지역이다.
온종일 가도록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으니 이게 시골이지 시골과 다른 게 무엇이더냐.
오후에는 고이 간직해 두었던 쿠폰을 써먹기로 했다.
버거킹에서 주니어 와퍼 하나 사면 하나는 거저 주겠다는 쿠폰이다.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손주(미국 중학교 1학년 = 한국 초등학교 6학년) 하굣길에
픽업해 오면서 먹으라고 줬다.
손주야 좋아서 안 하던 인사까지 깍듯이 한다. “고맙습니다”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도 좋다.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된 거지.
저녁을 먹는데 퇴근해서 집에 온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왜 아이에게 정크 후드를 사 줬느냐는 것이다.
햄버거며, 피자, 타코를 사서 주면 안 된다는 일장 연설을 듣는데 한 시간도 넘게
전화통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혼이 났다.
오늘 또 손주 픽업하러 갔다.
나는 학교까지 가지 않고 손주와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자기 아들 둘을 픽업하는 길에
우리 손주까지 태워서 온다.
나는 손주 친구네 집에서 손주를 픽업하면 된다.
오늘은 특별히 야구 연습이 있어서 야구 운동장에 태워다 주었다.
운동장 공원에 내려놓고 돌아서려는데 손주 녀석이 묻는다.
“할아버지. 가방은 차에다가 놔두고 가면 안 돼요?“
제 딴에는 가방 메고 야구 기구가 든 백도 들고 가기에 무겁고 덥겠기에 한 말이다.
나는 퍼뜩 딸의 고성이 생각났다.
”얘. 너의 엄마가 퇴근길에 널 픽업하러 올 텐데 가방이 없으면 무엇이라고 하겠니?
난 그 소리 듣기 싫어.“
손주 녀석도 제 엄마를 잘 아는지라 웃으면서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공원으로 들어간다.
딸이라고 해서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애들이 커가면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어떻게 좋은 짓만 골라서 하겠는가.
‘한창 커가는 애들은 뭘 먹어도 다 소화 잘 시키고 그러는 거지 그까짓 햄버거 하나 먹었다고
살이라도 찐다더냐?’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딸 말에 따르면 학교에서 아침도 주지, 점심도 주지. 피자며 햄버거, 핫도그에 포테이토 칩도 먹지.
온종일 먹자판이니 배가 고플 새가 없단다.
부모라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앞에 놓고 먹지 말아야 하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게 없어서 비실비실 말라죽어야 하는 뼈아픈 고통을 겪는 북한 아동들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