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비행기가 텅텅 비어 갈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이코노미석엔 승객들이 꽤 많다.
A350-900기종은 좌우 창가 쪽에 3석씩 그리고 중간에 3석이 나란히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승객이 많아서 지나가는 스튜어디스에게 물어보았다.
“웬 승객이 이렇게 많아요?”
“개학 때가 돼서 돌아가는 학생들이에요.”
아닌 게 아니라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옆좌석에 앉은 한국 여자도 영어 소설을 읽는 거로 봐서 학생 같았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불이 꺼졌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의자를 뒤로 젖혔다. 젖혀 봤지 10도 정도지만 사람의 몸이라는 게 간사해서
조금만 뒤로 눕혀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뒷좌석 젊은이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무슨 일인가 해서 뒤돌아보았다.
지금 식사 중이니 의자를 접어달란다.
식사가 늦어졌나보다 하고 다시 의자를 접었다.
머리에 소니 소음방지 헤드셋을 썼다. 소음방지 헤드셋을 끼면 장시간 여행에도
귀가 막히거나 멍멍하는 증상이 없어서 좋다.
어둡고 침침한 실내에서 승객들은 모두 잠자리에 든 것 같았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제는 자야겠기에 담요를 덮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니나 다를까 뒷좌석 젊은이가 어깨를 툭툭 친다.
재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TV를 보는데 의자를 뒤로 눕히지 말아달란다.
아마도 이 젊은이가 비행기를 처음 타는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처제가 한국에 들어가는 비행기 속에서 뒷좌석 승객과 싸움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행기 여행에 익숙하지 못한 승객들은 자질구레한 에티켓을 잘 모른다.
기내는 특수 공간이어서 세상 어느 곳보다도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자신이 앉아 있는 좁은 좌석뿐이다.
한 치만 벗어나도 남의 공간이다.
좌석 등받이를 10도 정도 젖힐 수 있는 것은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한
비행사 측의 배려이고 좌석을 빌린 승객의 권리이다.
안면부지의 승객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자신이 직접 대면으로 말하지 말고 제삼자를
내 세우는 게 좋다. 직접 부탁 했다가 거절당하면 민망하기도 하고 기분도 상하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상대방도 여행 내내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남아 있어서 개운치 못한
기분이다. 그보다는 스튜어디스란 제삼자를 중간에 메신저로 활용하면 좋다.
메신저가 말을 전해주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스튜어디스 호출 버튼을 눌렀다.
천장에 스튜어디스 호출 등이 반짝이기가 무섭게 스튜어디스가 쪼르르 달려왔다.
헤드셋을 벗어들고 정황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하면서 뒷좌석 승객이 옆의 빈자리로 옮겨 앉으라는 해결책도 제시해 주었다.
언뜻 보아도 신 내기인 스튜어디스는 내 말만 듣고는 그냥 가버렸다.
안에 들어가서 고참 선배에게 물어보았는지 다시 쪼르르 달려왔다.
뒷좌석 승객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젊은이가 기분 나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담요를 어깨까지 올려 덮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