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에 딸이 한동네에서 살면서 서로 오고 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한동안 잊고 살던 지난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바쁘게도 만든다.
딸은 아들 하나뿐인데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 엄마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손주도 다닌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학교 건물은 그대로이지만 교장 선생님을 위시해서 선생님들은 모두 바뀌었고
교무실도 다른 건물로 옮겨 앉았다.
그렇지만 주차장이며 학교가 파하면 봉사자들이 건너가는 길에서 교통 정리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축제가 있어서 온갖 게임도 하고 발표회도 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나도 젊은 시절이어서 일에 얽매여 바쁘게 지냈다.
바쁜 와중에도 딸을 학교에 바래다주던 추억이 새롭다.
은퇴해서 할 일 없는 내게 어쩌다가 행복한 일거리가 생겼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걸어오는 손주를 딸네 집에서 기다리는 일이다.
법적으로 13살 미만 아이는 보호자 없이 홀로 집에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보다 더 보람된 업무가 주어졌다.
손주가 바이올린 연주자로 출연하는 음악회에 학부모를 대신해서 관람하는 일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놀던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자
운동장에 각 학년, 각반별로 줄지어 앉았다.
앉기만 하는 게 아니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누가 조용히 하라고 시키나 해서 둘러보았다.
선생님이나 누구도 조용히 하라고 시키는 어른은 없었다.
아이들이 알아서 줄을 따라 앉아 조용히 기다린다.
한 줄씩 일어나 일렬로 반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학생들인데 말을 잘 듣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전 10시. 클래식 연주회는 운동장 한쪽에서 열렸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연주 학생들이 모여서 음악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그동안 익혀온 곡을 연주했다.
연주하는 학생들보다 구경하는 학부모들이 더 좋아한다.
사진이며 동영상을 찍고 손뼉도 친다.
나는 손주를 보는 데도 흐뭇하고 대견한데 아이의 학부모라면 얼마나 사랑스럽겠는가?
프락터 초등학교는 5학년이 졸업이다.
손주는 다음 주 금요일이면 졸업하고 중학교에 간다.
5학년생들이 졸업 전에 연주회를 여는 거다.
네다섯 곡 짧은 연주이지만 어린 학생들은 처음 경험해 보는 연주회이니 실수 안 하려고
열심히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연주회인데 우리 손주 혼자만 반바지를 입은 게 조금은 무례해 보였지만
초등학교 연주회라는 게 그런 거지 뭐 하고 넘겼다.
클래식 연주회가 끝나면서 곧바로 브라스 밴드 연주회가 이어졌다.
오후 3시. 학교가 끝날 무렵 손주를 태우러 갔다.
평상시에는 늘 걸어서 집에 오지만 오늘은 바이올린도 있을 테고 들고 올게 많아서
태워주기로 했다.
초등학교 주차장에 차들이 많아서 차댈 자리가 없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진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 학교까지 걸어갔다.
교문에는 아무도 없고 주차장 입구에서 학부모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학교가 파하고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하나같이 신이 나서
조잘댄다.
엄마는 걸어 나오는 자기 아이를 금세 알아본다.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만나는 아이처럼 부둥켜안고 뺌에 입을 맞춘다.
사내아이는 아빠를 보고 달려놔서 안긴다.
아침에 헤어졌다가 오후에 만나는데 마치 이산가족 만나듯 얼싸안고 행복해한다.
이렇게 행복한 장면은 매일 반복해서 벌어진다.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로 가득한 초등학교 출구의 오후다.
나도 그들처럼 손주에게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보여주었다.
내가 인생을 살아봐서 아는 건데 아이가 10살이 되기까지가 가장 귀엽고 예쁜 나이다.
오로지 행복만 가져다주는 절정의 나이이다.
인생 중에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오후 한때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로 가득한 교정에서 같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할 일 없는 늙은 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