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보내는 문자나 유튜브에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좋은 소통 수단이 된다. 나는 여러 명 지인을 카톡 리스트에 올려놓고 내가 받은
유튜브 중에서 좋은 것으로 골라 매일 한편씩 보낸다.
지인이라는 게 모두 함께 아는 지인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이지만,
각자 서로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외사촌 누님이라든가, 한국에 있는 동창, 미국에 있는 친구, LA에서 사는 동생
뭐 이런 식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나처럼 늙어가는 처지라는 사실이다.
서로 주고받다 보니 내가 받는 유튜브에 훌륭한 노래도 많고,
아름다운 사연이라든가 유용한 글도 있다.
내 나름대로 선정해서 버리기 아까운 유튜브는 함께 공유한다.
신선하고 청명한 명곡에 아름다운 그림이 가미 된 유튜브를 보내줄 때면,
받는 사람이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만 해도 기분 좋다.
훌륭한 유튜브를 보내주면 고맙다는 답신도 받고 그에 상응하는 유튜브 회신도 온다.
유튜브가 오가면서 간단한 소식도 보내온다.
어젯밤 친구가 몽블랑 등산을 위해서 스위스에 도착했다는 간단한 문자도 받았다.
카톡이란 기능이 없었다면 뜸하게 지내던 동창이 스위스에 갔는지 뭘 하고 지내는지
어찌 알겠는가.
지금은 말 없는 소통의 시대이다.
나보다 십 년도 더 늙은 외사촌 누님에게도 빠짐없이 매일 유튜브를 보내드린다.
누님도 열심이어서 이제는 제법 볼만한 찬양 유튜브를 보내온다.
한번은 한 치 건너 두 치인 먼 친척 누님의 번호를 주면서 그쪽으로도 보내주란다.
혼자 사는 먼 친척 누님은 다리가 불편해서 잘 걷지도 못해 늘 집안에만 있다.
말할 사람도 없단다. 일방통행이지만 빠짐없이 보내드린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하루에 한 번 내게서 오는 유튜브 기다리는 게 낙이란다.
노인은 우울증과 이로 인한 황혼 자살이 심각한 문제다.
노인 3명 중 1명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노인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노인은 집에서 혼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회와 격리되고 소외감을 느낀다.
이럴 때 카톡이나마 울려온다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아흔 살인 누님들에게 꼬박꼬박 카톡으로 유튜브를 보내드리면서
당신도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소통에 보람을 느낀다.
지금은 말없이도 소통이 가능한 시대이다.
전화 걸까 말까, 먼저 전화하기에는 자존심 상하는 것 같고, 께름칙하기도 하고,
전화했다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도 소통을 해야 하겠고,
서로 자존심 상하지 않고 소통이 가능한 방법 중의 하나가 카톡이다.
누구나 보아도 상관없는 유튜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개중에 어떤 친구는 유치하게 뭐 이런 거를 보내느냐?
나를 뭐로 보고 이따위를 보내느냐는 극보수적인 인물도 있다.
그런 친구라고 해서 클래식 루치아노 파바로티, 도밍고의 노래도 안 듣는단 말인가?
문자 소통으로 이어지더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현대 버전(version)으로 옮기면 “기쁨과 괴로움을 같이 공유하지 못한다면
형제, 친구, 친척이라도 이웃만 못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소통은 선이고 선은 이어져야 한다.
여기서 선은 선(善: 선할 선)일 수도 있고, 선(線: 줄 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