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낳은 송아지만 한 노루가 뒷마당에 나타났다.

천천히 뒷마당을 가로질러 가면서 집 안들 들여다보는 노루.

귀가 너무 커서 얼굴은 없고 귀만 보인다. 귀가 어른 손바닥보다 크다.

그 큰 귀를 거의 360도 회전시키면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예민하다.

겁먹은 눈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경사진 밑으로 쏜살같이 숨어든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노루가 뒷마당에 들어왔지?

우리 집 울타리에 구멍이 났나?

 

일단 뒷마당에 나가서 노루를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나의 발소리를 듣고 놀란 노루가 경사진 밑으로 새로 놓은 우든 층계를 따라 올라오는

노루 발소리가 들리더니 우뚝 서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뭐 어떻게 한 것도 없는데 노루는 지레 겁에 질려서 가로 뛰고 시루 뛴다.

노루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울타리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뒷마당 경사진 밑으로 내려가면서 울타리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숲속에 숨죽이고 숨어있던 노루가 다시 뛰어나오면서 냅다 도망치려고 뛰어간다.

뛰어봤자 독 안에 든 쥐다.

노루도 도망갈 구멍을 찾아 헤매지만, 그럴만한 구멍은 없다.

나는 노루가 도망갈 길을 열어주어야 하겠기에 뒷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노루가 열린 문으로 도망가기를 바라서다.

사람이 뒷마당에 있으면 노루가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왔다.

 

노루가 뒷마당에 들어오는 걸 나는 원치 않는다.

노루는 화초가 무엇인지 채소가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노루의 눈에는 먹을 것이냐 아니냐의 기준만 있다.

전에도 노루가 들어와서 화초란 화초는 다 뜯어 먹은 일이 있어서 노루가 뒷마당에

들어오면 안 된다.

 

오후에 뒷마당에 나가 보았더니 노루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통해서 나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뒷마당에서 사라졌다는 게 중요했다.

 

다음 날 오전에 아내가 딸네 개 ‘쉐이’를 데리고 왔다.

아내는 아침 운동으로 걸을 때면 개와 동행한다.

아래층에서 “쉐이~ 쉐이~”하면서 개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나는 ‘쉐이’가 뒷마당에 나가서 뛰어다니니까 부르나보다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노루가 또 들어왔다.

 

‘쉐이‘는 개인데 개가 노루를 보고 그냥 있을 리 없다.

쉐이 생각에 “이크. 이게 웬 놈이냐? 이놈은 내가 책임지고 해치워야 하는 거잖아?

가서 물어야지. 멍~ 멍~ ”

쉐이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는 책임감에서 노루를 향해 달려갔다.

노루는 깜짝 놀랐다.

“이 집에 개가 없었는데 어디서 왔지? 큰일 났구나!

사람 같았으면 그냥 슬슬 피해도 해코지는 하지 않으니까 그냥 무서운 척하면서

피해 가면 되지만 상대가 개인 까닭에 잘못 대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것이다.

도망가야 하는데 울타리가 막혀있으니!

에라 모르겠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힘껏 점프해 보는 거다.”

노루는 단숨에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망갔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아내의 말로는 그까짓 울타리 정도는 노루에게 장애물도

아니더란다. 단숨에 뛰어넘더란다.

나는 지금껏 우리 집 울타리가 높은 줄로만 알았다. 어른 키만큼 높으니까.

울타리 밑으로 기어들어 오는 여우나 너구리는 보았어도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넘는

노루는 보지 못했다.

노루도 먹고살기 위해서 특출한 기술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커다란 귀이고

다른 하나는 높이 점프하는 기술이다.

 

나는 노루를 해코지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노루는 사람이란 족속은 누구나

자신들을 잡으려 든다는 선입관을 지녔다.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는 무너트릴 수 없는 갭이다.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몸짓의 표현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오로지 신뢰만이 소통의 통로인데 신뢰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다.

 

노루가 뒷마당에 나타나 내게 하나의 의문을 던지고 떠났다.

화초는 식물이고 식물은 내게 잠시 기쁨을 줄 뿐인데

노루가 먹고 싶은 화초를 먹게 내버려 두는 게 옳은지?

노루가 못 먹게 막아야 하는 게 옳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