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해방인 동시에 너무 자유가 많아서 오히려 막막하다.
그동안 돈 버느라고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출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해결해야 할 일들이 없다는 것이 바람직 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살든 한국에서 살든 해야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목표가 있어야 한다.
섣부른 은퇴 생활은 사람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아침에 느지막하게 일어나고 오후에 낮잠 자며, 하는 일 없이 보내는 날들이 너무나
갑갑하고 지루하다.
삶에 대한 의욕과 에너지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정신건강은 엉망이 되고 만다.
손주 아이들은 벌써 겨울 방학을 위한 바쁜 학교생활이다.
아이들을 둔 학부모들도 덩달아 바쁘다.
직장 일하랴, 아이들 학교에 보내랴, 몸이 둘이라도 당해내기 힘들 때다.
집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게 일과다.
혹시 어디서 전화나 오지 않나 하고 맥없이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을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친구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린다.
“요새 뭐하면서 지내니?”
“손주들 학교에 실어다 주는 거지 뭐.”
참 한가한 직장이다. 손주들 봐준다고 그들이 할아버지 말을 재미있게 듣는 것도 아니다.
할아버지 말은 건성으로 들어줘야 하는 말이라는 걸 애들도 다 안다.
예전에는 나를 꼭 필요로 하는 필수적인 일들이 있어서 사는 보람을 느꼈는데
지금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만 있다.
아무도 참견하는 사람도 없고 평가하는 사람도 없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은퇴 생활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일이 사라진 것.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좋아하던 사람들은 특히 상실감이 크다.
둘째는 정체성 상실. 수십 년 직장을 축으로 형성된 정체성이 은퇴와 함께 사라지면서
존재감이 무너진 느낌이다.
셋째는 건강 문제. 지병이 악화해 고통 속에 죽음을 맞게 될 두려움이다.
이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매일 매일 온종일 바쁘다.
해야 할 일이 밀려 있어서 새벽부터 일한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글 나부랭이일망정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뻔했나?
글 쓴다고 맨날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글을 쓸 때만 재미있다.
목표를 정해놓으면 재미있다.
여기저기 공모전에 응모할 목표를 정해놓으면 바쁘고 재미있고 보람도 느낀다.
세상에서 상 타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
꿈을 그리면서 한 해를 보내면 금세 흘러간다.
세계의 대표적 장수지역인 오키나와에서 노인들은 은퇴를 모른다.
102세의 가라테 사범은 무술 가르치는 것,
101세의 어부는 가족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고기 낚는 것,
102세의 할머니는 증손녀를 품에 안고 돌본다.
삶에 기쁨과 행복, 보람을 주니 멈출 이유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건강에 좋고 장수로 연결된다.
노년이 몰고 오는 거대한 시간의 백지에 무엇을 그릴 것인가.
무엇을 하면 생에 의미가 생기고 노년이 행복할 것인가.
장수의 출발점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의 세 요소가
겹치는 어떤 것.
내가 잘하고, 좋아하며, 가치와 보람을 느끼는 건 무엇인가.
그렇게 자신을 짚어보면 길이 보인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된다.
그 결과 평생 과학자였던 분은 노년에 시인이 되고,
교사였던 분은 커뮤니티 활동가가 된다.
망망대해 같은 시간의 바다에서 필요한 것은 목적이 있는 삶이다.
목적이 있어야 노년이 건강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