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분업화된 사회에서 내 건강에 대한 최종적 책임자는 나 자신이고
병원에 있는 의사는 진찰 결과를 전해주는 메신저에 불과하다.
긴급한 환자 내지는 수술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한 외래환자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는 마치 의사가 병을 고쳐주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의사는 병에 관한 처방을 내려줄 뿐 의견과 치료를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택할 것인지는 환자가 결정할 몫이다.
또는 좀 더 두고 볼 것인지 역시 환자의 몫이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의사가 하는 말을 믿기 전에 다른 의사의 견해는 어떤지
들어볼 일이다.
한국도 병원 예약 시대로 돌입했다.
내가 병원에 예약했던 까닭은 혈압이 높아서이다.
나는 혈압약을 다른 약으로 바꿔주려니 하고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혈압 때문에 의사를 보겠다고 했더니 전화로 예약받는 여자가 심장내과로 예약해 주었다.
왜 심장 내과로 예약해 주는지 지금도 아리송하다.
심장 내과 의사는 초음파 심전도 검사부터 하라고 다음 주로 예약을 넘겼다.
매번 예약할 때마다 적은 돈이지만 지불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정해준 다음 주다.
노인이라서 아침 일찌감치 첫 환자로 예약해 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이들이야 일하러 가야지 왜 아침부터 병원에 가겠는가?
할 일 없는 노인들은 병원 가는 일이 일과 중에 중요한 일과일 것이니
아침 스케줄은 모두 노인들로 채워놓았다.
자동 예약기에 다가서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더니 13만 5천 원을 내란다.
주머니에서 돈은 꺼내 세어봤더니 딱 13만 원이다.
아침에 집을 나오면서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나왔는데 조금 모자란다.
카드도 없고 난감했다.
시간이나마 여유롭게 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되돌아서 집까지 걸어왔다.
다행인 것은 집과 병원 거리가 부지런히 걸어서 15분이면 된다.
아침 운동치고는 자연스럽게 충분히 걸었다.
심전도실은 매우 협소했다. 작은 방에 넓은 테이블 2개가 있고 세 사람이 좁은 방에서
근무하는 모양이다. 테이블마다 컴퓨터가 켜져 있다.
나더러 의자에 앉으라고 가리키는 의자가 냉장고와 테이블 사이에 끼어있는 좁은 공간에
박혀있는 의자다. 환자가 앉을 만한 의자가 아니었다.
다시 물어보았으나 그 의자가 맞단다. 억지고 구석진 자리에 꾸겨 앉았다.
웃옷을 벗으란다.
자리가 좁아서 앉은 자세로는 웃옷을 벗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겨울이라서 두꺼운
점퍼를 입었으니 몸이 뒤룩뒤룩했다.
미안하지만 일어서서 두어 발작 앞으로 나가 공간을 확보하고 옷을 벗겠다고 했다.
웃옷을 벗어서 빈 의자에 걸쳐놓고 다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는 셔츠를 올리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는 자리가 협소해서 셔츠를 올릴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다시 일어서서 두어 발작 앞으로 나가 혁대부터 풀고 셔츠를 올렸다.
공간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전도 검사하는 침대가 아이 침대처럼 조그마해서 놀랐고 심전도 검사기 부착시켜주는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놀랐다.
심전도 검사실에서 ‘심전도 기록기’를 부착했다.
가슴에 휴대폰만 한 크기의 플라스틱 박스를 매달고 산다는 게 불편하고 어색하다.
내일 오전 9시에 다시 오라는 말만 듣고 나왔다.
중앙 로비에 나가 보았더니 병원 자체가 작고 아담해서 사람들로 복작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람 수를 세어본다면 많은 숫자가 아닌데도 공간이 협소해서 사람이 많아 보였다.
미국 병원은 공간이 넓어서 사람이 많아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내가 LA 한인 타운에 가서 쇼핑센터에 들렀더니 이런 식으로 공간이 좁았다.
가게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좁은 가게마다 주인이 따로 있었다.
꼭 한국식 그대로였다. 병원 역시 한국식으로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다.
한국인은 서구인에 비해서 체구가 작아서 공간을 작게 설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간이 좁으면 이동 거리도 짧고 에너지 소비도 적을 것이다.
마치 현대 쏘나타가 한국인 체구에 맞는 것처럼 병원 건물도 쏘나타처럼 아담하게 지었다.
오전 9시라고 했지만, 그보다 일찍 갔다. 9시가 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의료실로 들어오란다. 다시 구석진 의자에 앉아서 가슴팍 여기저기에 부착된 전깃줄들을
떼어냈다. 다음 주 월요일 오후 3시로 의사 대면이 예약됐다.
심전도 검사를 하면서 옛날 내가 30대 초반이었을 때가 생각났다.
둘째가 갓 태어났을 때였다.
어느 날 자다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와서 깨어났다.
가슴 중앙 부위가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바닥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대굴대굴 굴렀다. 소리를 지르려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짧았지만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통증은 곧 사라졌다.
다음 날 병원에서 심전도 검사를 했다. 아무 이상 없단다.
마치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짱하단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심장마비 증상이 아니었나 싶다.
만일 그때 내가 죽었다면 우리 가정에서 가장 똑똑한 막내딸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미 태어난 아들과 딸은 제대로 성장이나 했을는지!
젊은 아내는 어떻게 살았을지!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은 내 복이 아니라 내 아내와 자식들의 복 덕분에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산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해 본 건데 다음 주 월요일, 심장내과 의사를 만나면
의사가 심전도 기록을 훑어보면서
“당신 심장마비 증세가 있어. 조심해야 해.” 아니면
“미리 준비할 거 있거든 준비해 두는 게 좋겠어.“
하지나 않을까 혼자서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