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맛 본 라면

IMG_3-2 (2)

1970년 때, 미국에는 한국 라면이라는 게 없었다.

삼양 라면이 겨우 한국에서도 자리 잡을까 말까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내가 미국에서 즐겨 먹던 라면은 일본산 이치방라면이었다.

이치방라면밖에 없기도 했지만, 라면 중에서는 이치방라면이 우리 입맛에 가장

근접했기 때문이었다. 라면을 박스로 사다 놓고 끓여 먹던 생각이 난다.

여행을 떠날 때면 꼭 이치방라면을 챙겨서 가지고 떠나기도 했다.

 

차츰차츰 한국 라면이 한국 식품점에 진열되면서 너구리 라면을 맛보게 되었다.

얼큰하고 시원한 맛에 라면을 먹고 국물까지 다 마셔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맛있었다.

다시 이치방을 먹어보았으나 그렇게도 맛있던 이치방이 단번에 맛없는 천덕꾸러기로

변해 버렸다.

사람의 입이라는 게 이렇게 간사할 수가 없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이치방없이는 못 살았는데 한국 라면 맛을 본 후에는

이치방이 맛없는 라면 1위가 되다니!

그 밋밋하고 찝찔한 맛이 왜 좋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 식품점에는 수많은 종류의 한국 라면만 있다.

중국 식품점에 가도 중국 라면보다 한국 신라면, 너구리가 판친다.

세계인들, 그중에도 중국인들은 왜 한국 라면에 길들어가는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체형은 두루뭉술한 체형이다. 바짝 마르지도 않고 살이 듬성듬성

쪄서 약간 몸무게가 나갈만한 체형을 중국인들은 좋아한다.

중국인들은 음식 재료를 커다란 프라이팬에 넣고 기름을 듬뿍 친 다음 들들 볶는다.

무엇이든 기름에 튀기거나 볶아 먹는다. 양념이 거의 없어서 중국 음식은 양장피, 해삼탕,

몽고리안피푸 할 것 없이 맛이 밋밋하다.

반면에 일본인의 체형은 마른 체구에 빠릿빠릿하다. 입는 옷도 원색은 없고 흐린 색으로

흰색, 회색 등 잘 눈에 띄지 않는 색을 선호한다.

음식도 다꾸왕처럼 짜지도 맵지도 않고 그냥 슴슴하게 먹는다.

한국은 그 두 나라 사이에서 살이 찌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은 가장 적당한 체구다.

음식도 다른 나라에서는 먹지 않는 나물이 많다 보니 양념이 발달했다.

어떤 음식도 한국식 양념을 넣고 비비거나 끓이면 독특한 맛을 낸다.

그중에서도 매운맛은 양념의 진가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바로 한국 라면이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라면은 눈부신 약진을 이어가고 있다.

간편식으로 각광받던 라면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로 대접받는다.

라면 수출은 2015년 이후 계속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해 수출액도 67,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올해 상반기 국가별로 수출 비중을 보면 중국이 9,191만 달러로 가장 비중이 높다.

그다음 미국(4,786만 달러), 일본(3,032만 달러) 순이었다.

지난해 수출액도 마찬가지로 중국이 22.2%1위를 차지했고 미국과 일본이

각각 12%, 9.7% 순으로 나타났다.

상위 3개국의 비중이 44%로 전체 수출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한 셈이다.

 

이는 코로나19로 내식 수요가 증가하면서 라면이 전 세계적으로 한 끼 식사이자

비상식량으로 주목받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중음악과 영화, 드라마 등 K-콘텐츠의 인기와 동반 성장한 측면도 있다.

 

세계 라면 시장은 점진적으로 규모가 커져만 간다. 발 빠르게 농심은 미국에

라면 공장을 지었나 하면 제2공장을 준공하고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수년 내 미국 라면시장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중남미 시장의 교두보로도

활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질세라 삼양도 미국 현지 공장을 세웠다.

 

한국 라면이 세계에서 각광받는 까닭은 매운맛 때문이다.

매운맛의 매력은 먹으면 입 안이 얼얼하고 속이 확 풀리는 데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맛본 사람은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태어나면서부터 매운맛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밥상에 반찬이 김치밖에 없었다.

김치가 매워서 안 먹겠다고 하면 엄마는 김치를 물이 씻어서 배추김치의 살찐 줄기를

쭉 찢어서 물에 말은 밥 한 숟갈에 씻은 김치 함 조각을 얻어주곤 했다.

어려서 길든 매운맛이 한국인의 음식이 되었고 드디어 라면으로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피부색이 다른 종족이라고 해도 그들도 사람인데 사람이 맛있고 없고를

모르겠는가?

매운맛이 빠진 라면을 무슨 맛에 먹겠는가?

돌이켜 보건대

세종대왕이 라면 맛을 보았다면 한글이 꼬부랑 글씨체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