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일기예보에 호남 지역엔 폭설이 내렸다.
서울은 기록적인 추위로 영하 13.5도라고 호들갑을 떤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럽다면서 사고 자동차들이 뒤엉킨 장면을 여러 컷 보여주었다.
노인들은 외출하지 말고 집에 머물러 있는 게 좋겠다는 주의도 잊지 않았다.
외출했다가 빙판길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란다.
하나도 그른 말은 없다. 나는 어제 온종일 집에서 머물렀다.
오늘도 집에만 있다가 점심은 만두나 사다 먹어야 하겠기에 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지 않아도 추울 때 입으려고 겨울 솜바지를 사다 두었었다.
지난주의 일이다.
광장시장에 겨울옷을 사러 갔다.
겨울에 목을 감싸는 검은색 터틀넥 니트 하나하고 누빈 바지를 사기로 했다.
옷 파는 주인아저씨가 올해 나온 바지라면서 솜바지 같은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만 파는 아저씨가 어련히 알아서 따뜻한 바지를 입었겠나 싶어서 물어보지도 않고
같은 바지로 샀다. 검은색 터틀넥 니트도 샀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 주기에 그냥 들고 왔다.
열어서 입어보지도 않고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채로 집구석에 내버려 뒀는데
마침 오늘은 날씨가 몹시 춥다기에 꺼내 입었다.
옛날 솜바지처럼 만들었는데 바지에 솜 대신에 기러기 털을 넣었단다.
기러기 털 샘플을 작은 플라스틱에 넣어 달아놓았으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바지를 입었는데 바짓가랑이 안 발목에 가서는 솜바지 다님 매듯 조이면서
바람 들어오는 걸 막아준다.
기러기 털이 돼서 그런지 가볍기는 풍선 같고 따스하기는 전기담요 같다.
터틀넥 니트에 기러기 털 바지를 입고 나섰더니 추운 줄 모르겠다.
든든히 차려입고 ‘용감한 왕만두’ 집에 만두 사러 갔다.
멀지 않아서 걸어가면 될만한 거리다.
새로 생긴 왕만두 집이어서 그렇겠지만 한 달 전만 해도 손님이 없었다.
만둣집으로는 가게가 너무 크다 했더니 안쪽으로는 식당도 한다.
만둣국, 떡국, 국수까지 판다. 지난달에는 만둣국을 시켜 먹었다.
주인아저씨가 늙수그레한 게 적어도 칠십은 되어 보였다.
혼자서 만두 빚으랴 장사하라 바쁘게 돌아간다.
만둣국 끓이는 거로 봐서 혼자서는 가게 운영이 안 될 텐데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추워지면서 만두 찾는 손님이 많아지니까 여자 종업원을 썼다.
여자 종업원도 나이 꽤나 먹어 보였다.
여자 종업원은 앞에서 만두 주문을 받고 데워서 주고 돈도 받는 일을 한다.
주인아저씨는 뭘 하나 봤더니 뒤에서 온종일 만두만 빚는다.
지난번에 만두 사러 가서 만두 덥힐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종업원 아주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은 아주머니뿐이니까 보지 않을 수 없다.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 망정이지!
아주머니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다가 그만 왕만두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주머니는 집어서 손으로 쓱쓱 털어내고는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저 만두를 누군가가 먹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께름칙했다.
엊그제는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왕만두 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김이
목욕탕에 들어선 것처럼 시야를 막았다.
왕만두 5개에 5천 원짜리 한 팩을 주문했다.
왕만두를 담아주는 아주머니에게 5만 원권을 건네주었다.
아주머니는 받아 든 돈을 돈통에 넣고 거슬러 줄 생각을 안 한다.
내가 거스름돈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고 나서야 자기는 5천 원짜리 지폐인 줄
알았다면서 주섬주섬 꺼내 준다. 참 재미있는 아주머니다.
추운 날씨지만 두둑이 차려입었겠다 추운 줄 모르고 왕만두 집으로 걸어갔다.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고기 왕만두 5개들이 한 팩을 주문했다.
기다리는 사이에 바람이 불기에 옆 통로에 들어가 바람을 피했다.
그사이에 어떤 손님이 주문하는 게 보였다.
잠시 후 손님은 가고 내게도 만두 팩을 주기에 받아서 들었다.
집에 와서 밖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만두 팩을 열었다.
아뿔싸! 내가 주문한 고기 왕만두가 아니라 열 개가 든 김치 교자만두가 아닌가.
나는 김치만두는 먹지 않는데 어쩌나 했다.
다시 싸 들고 왕만두 집으로 향했다.
가서 아주머니를 뵙자마자 아주머니는 벌써 알아차리고 있었다.
먼저 손님한테서 만두 잘 못 주었다고 전화로 통보받았단다.
다시 기다려서 새로 찐 고기 왕만두를 받아 들고 오려는데 아주머니가 미안하다면서
찐빵 하나를 더 얹어 준다.
참 하늘은 오묘하셔서 내가 운동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만 있었더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운동을 시키는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