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만둣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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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라 아침에 만둣국을 먹었다.

만둣국을 먹으면서 재작년인가? 친구한테서 걸려 왔던 전화가 생각났다.

 

특별히 무슨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해 아침이니까 인사차 건 거란다.

와이프 살아 있을 때는 전화 한번 없더니 혼자서 살자니 적적해서 그런지

뻔 찔 전화다.

만둣국이나 먹었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만둣국이 지겹다면서 하소연한다.

소고기를 뼈다귀체로 고아놓고 만둣국 40인분을 끊였단다.

친구의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혼자서 사는 주제에 40인분을

끓이다니?

아니, 너 혼자 살면서 미쳤니? 그렇게 많이 끓이게?”

교회 사람들 다 불러서 먹였어.”

그 많은 만두는 누가 빚고? 교회 여자들더러 와서 좀 빚으라고 하지 그랬니?”

, 와서들 떠드는 거 귀찮아, 내가 다 빚었어.”

너 정신 나갔구나, 만두 40인분이면 400개가 넘을 텐데 그걸 너 혼자서 다

빚었다고? 너네 교회는 만둣국 대접하는 교인이 너밖에 없니?

다 늙은 홀아비더러 끓이라고 하게?“

내가 대접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뭐, 먹고 남은 건 싸가라고 했어.”

친구는 이런 사람이다. 하면서

여기저기 새해 인사차 전화를 걸어줬는데 나한테 전화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야.“

나 들어보라는 소리 같아서 찔끔했다.

지금 세상에 남의 시간 빼앗아 가면서 전화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니? 새해 인사 정도는

문자로 보냈겠지. 너처럼 구닥다리 노인이나 전화할까?”

친구가 구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현시대에서 너무 동떨어져서 산다.

 

만둣국 대접했다는 이야기는 재작년 행사였으니 금년에도 그랬나 해서 물어보았다.

올해도 교인들 불러서 만둣국 대접했니?”

아니야. 안 했어. 나한테서 얻어만 먹었지, 누구 하나 만둣국 끓이겠다는 교인은

없더라고.”

그럴 테지. 바쁜 세상에 누가 일거리를 자청해서 나서겠어?”

지금 사람들은 틀려먹었어. 얻어먹을 줄만 알았지 대접할 줄은 몰라요.”

그게 아니라 네가 변신하지 못했다는 증거야. 시대 흐름에 뒤떨어졌다는 말이다.”

내가 왜 뒤떨어져. 너무 앞서가서 문제지. 아들 며느리가 손녀 데리고 설쇠러 오겠다는

거를 오지 말라고 했어. 추운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다 고생이지 뭐냐.”

너 손녀 언제 봤니?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그래도 참아야지.”

네가 오지 말라면 걔네들은 안 오는 거야. 지금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새겨듣니?

오겠다면 그냥 오게 내버려 둬.”

못 새겨들어도 할 수 없지. 내 입에선 새겨들으라고 하는 말이 안 나오는 걸 어떻게 해.”

그게 바로 네가 시대에 맞춰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야. 다음부터는 까놓고 왔다가

가라고 해.”

 

노인이 할 일 없이 지내는 걸 보면 초라하고 가여워 보이는데

친구야말로 홀로 지내는 게 독거노인의 비애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설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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