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보다 3달이 젊다.
미국인들 중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80인 대통령이 과연 막중한 정책들을 제대로 시행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각) 밤 워싱턴DC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연두교서(국정연설)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당당하게 국정 운영을 해낼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했다고 CNN 반 죤스(Van Jones)
정치평론가가 말했다.
무엇보다도 장시간에 걸친 연설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연설문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긴 연설문을 모두 외어서 말하는 그의 기억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엊그제 내 팔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지금 세상에 환갑잔치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칠순 잔치도 덩달아서 사라졌다.
나 역시 환갑, 칠순 다 지내놓고 이제 팔순을 맞았는데,
그것도 코로나19라는 격동의 터널을 빠져나왔는데 팔순 잔치마저 거른다는 게 서운했다.
잔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일상은 차리기로 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서 오후 한때를 즐겼다.
손자가 여섯인데 가장 어린 막내 외손주가 2살이다.
당연히 2살짜리 외손주가 화제의 꽃이었다.
손주들한테서 절을 받았는데 막내 외손주가 절을 가장 잘했다.
큰 녀석들의 절하는 모습은 엉성하기만 했는데 막내 손주는 제대로 절하는 바람에
모두 웃음꽃을 피웠다.
나는 생일날엔 손자들의 절을 받는다.
절을 받고 절값으로 100달러짜리 새 지폐를 준다.
손자들에게 100달러면 큰돈이다. 저금하는지 어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 손주들도
돈이라면 좋아한다.
내가 절값을 주는 까닭은 지금까지 기억 속에 살아있는 할아버지와의 추억 때문이다.
내가 5살 되던 해의 설날이었다. 새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었다.
우리 4남매는 쪼르르 할아버지 댁으로 세배하러 갔다.
그때 할아버지는 사랑채에 계셨는데 사랑채는 방이 두 개 있었고 방과 방을 잊는
넓은 마루로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첫 번째 방에 계셨다. 우리 모두 세배를 드렸더니 세뱃돈을 꺼내 주셨다.
지폐를 나눠주었는데 유독 나에게는 조선 시대 동전 꾸러미를 주시는 거다.
5살 먹은 아이가 무슨 돈을 알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내게는 써먹을 수 없는 동전 꾸러미를
주셨던 거다. 하지만 나도 동전은 못 써먹는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동전 꾸러미를 냅다 던지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살다 보면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 마련인데 할아버지에게 절하고 절값 받는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