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만도 부족한 짧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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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만두를 덥혀서 접시에 담아 들고 거실 식탁에 앉았다.

따끈한 보리차로 입가심하고 창밖을 내다본다.

뒷마당 비탈에 산벚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옆집 뒷마당에 있는 나무지만 나뭇가지 한 무리가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 집으로

기울어 있으니 우리 집 꽃이나 매한가지다.

아직 봄은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뒷마당에 와서 손짓한다.

산벚나무꽃의 손짓에 이끌려 뒷마당으로 나가보았다.

 

어제는 없던 꽃이 오늘은 만발하다. 피면서 떨어지는 꽃잎도 있다.

산벚나무에 꽃이 너무 많아서 함박눈이 덮인 것처럼 나무가 온통 하얗다.

꽃잎이 눈보다 흰 게 흰색의 정수를 보여 주는 것 같다.

꽃이 피었나 하면 어느새 눈 날리듯 가볍게 날린다. 피는 것도 금세요, 지는 것도 금세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급하게 피고 지는 게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성격과 닮은 것 같다.

입춘이 지난 지 겨우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꽃은 제 세상 만났다고 비집고 피어난다.

산벚나무꽃은 기온에 맞춰 피는 게 아니라 절기에 맞춰 피나 보다.

 

다섯 꽃잎이 다과 목판에 찍어낸 듯 똑같다. 일란성쌍둥이도 이렇게 닮지는 못하리라.

나무에 꽃이 너무 많아서 꽃도 자기를 닮은 꽃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것이다.

꽃은 서로 먼저 피겠다며 경쟁하듯 일제히 목을 내밀어 한꺼번에 흰색을 분출하고 말았다.

여린 꽃잎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도 견뎌내지 못하고 흩날려 떨어진다.

꽃잎이 날리는 게 눈송이처럼 가볍고 은박종이처럼 반짝인다.

어느새 나무 밑이 꽃잎으로 하얗게 덮였다.

한꺼번에 몸을 불사르는 산벚나무꽃이 봄을 몰고 오는 봄의 전령 같다.

신비롭게도 보이고, 신성하게도 보인다.

꽃은 창조주가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피고 지리라.

 

꽃은 왜 필까?

수정을 위해서 피는 꽃도 있겠지만, 산벚나무는 수정이 필요 없는 나무인데도

꽃이 화사하게 핀다.

산골짝 으슥한 곳에서도 산벚나무꽃은 핀다. 그것도 화려하다 못해 찬란하리만치 눈부시다.

분명, 누구에게 보여 주려고 피는 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핀 꽃은 더욱 아니다.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다면 인적이 근접할 수 없는 골짜기에서 피겠는가?

사람 말고도 꽃을 즐기는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닐까?

 

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물체임이 분명하다.

조물주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만든 예술품이 꽃일 것이다.

신비스럽고 고운 빛깔을 연출하는가 하면,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보여 줌으로써 사람을 놀라게 한다.

 

꽃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꽃은 행복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는다.

무엇이 꽃을 행복하게 하는가?

꽃은 보아도, 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꽃과 시선이 마주치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난다,

꽃은 잠시나마 내 얼굴에 행복 마취 스프레이를 뿌려놓은 것처럼 나를 취하게 만든다.

꽃은 흐린 날에도, 비를 맞아도 웃는다. 심지어 바람에 날려 떨어지면서도 웃는다.

꽃이 햇볕을 밭으면 신 내린 무당처럼 살판났다고 아우성치며 행복해한다.

꽃은 행복하기만도 부족한 짧은 세월인데 언제 언짢은 표정 지을 짬이나 있느냐는 듯

웃고 또 웃는다.

 

알고 보면 인생도 그렇게 짧은 세월을 사는 건데

행복하기만도 부족하리만치 짧은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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