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강원도 속초에서 관광차 유람선을 타고 앞바다에 나갔다.
동해에서 바라본 설악산은 정말 장관이었다. 하늘로 치솟은 높은 바위 봉오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게 마치 개선장군을 보는 것처럼 늠름하고 장엄해 보였다.
아쉽게도 이런 경관은 사라지고 철 줄에 매달린 성냥갑 같은 박스가 설악산 능선에
둥둥 떠다니는 낯설고 어설픈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강원도가 오색케이블카 사업이랍시고 양양군 서면 오색리부터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
근처까지 케이블카를 연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근시안적 발상이다.
우리 세대는 한반도에 잠시 머물다가 가면 그만이다.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강산을 보고 즐기다가 후손에게 고대로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자연유산은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까짓 관광 수입 몇 푼 얻으려고 경관을 해치면서까지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니
앞날을 내다볼 줄 모르는 처사처럼 들린다.
나이 70에 은퇴하고 등반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하프 돔을
하나의 예로 소개하고 싶다.
세계 7대 장관 중의 하나인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 입구에서 바라보면
계곡 깊숙이에 거대한 바위 돔이 보이는데 칼로 반을 도려낸 것처럼 반쪽이다.
이름하여 하프 돔(Half Dome)이라 하는데 요세미티 공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프 돔은 해발 2,693m이며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되어 있다.
해마다 세계에서 4백만 명이 요세미티 공원을 찾아온다.
그중에서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하프 돔 등반을 희망한다.
하프 돔 등반을 꿈꾸고 도전한 사람 중에서도 소수만이 정상에 오른다.
나도 여러 번 요세미티 공원을 다녀왔어도 하프 돔 등반은 꿈만 꾸고 있었지,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공원 안내소에 가면 요세미티 공원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 하프 돔까지 등반하는
루트를 붉은색으로 그려 놓았다. 한번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모형을 보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자랑스럽게 하프 돔 등반 경험담을 말하는 게 아닌가.
모두 그 남자의 무용담에 귀 기울였다. 이야기를 듣자니 나도 모르게 등산 의욕이
솟구치면서 궁금한 문제점들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더 늙기 전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가 여름이었고 미국 독립기념일 바로 전 주말이었다.
새벽에 배낭을 메고 기대에 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웅장한 버날 폭포를 돌아서
계곡을 따라 5시간을 걸었다.
드디어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하프 돔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프 돔의 전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하프 돔 흰색 화강암에 반사된 햇빛이 어린 아기 살결처럼 눈부셨다.
하프 돔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우람하고 거대했다. 상상을 초월하리만치 덩치가 크고
장엄하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거인이 코앞에 딱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하프 돔에 개미만 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일렬로 달라붙어 기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하프 돔은 70~80°의 경사로 암벽 높이 120m를 일직선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1919년에 만든 ‘앤더슨 루트’라고 하는 등반 루트가 유일하다.
1.5m 폭으로 양쪽에 약 2m 간격마다 쇠말뚝을 박아 놓고 쇠로프로 연결해 놓았다.
양쪽 쇠말뚝에 송판을 가로질러 묶어 놓아 발을 디딜 수 있게 했다.
등반객들은 쇠줄을 잡은 채 오른쪽으로는 올라가고 왼쪽으로는 내려오고 있었다.
기록에 보면 1919년 정상에 오르는 루트가 개설된 이후 다섯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지난주에 한 사람이 죽었고, 2007년 6월 16일에는 37세의 일본인 등산가 히로후미 노하라
씨가 2/3 쯤 오르다가 90m 밑으로 굴러떨어져 죽었다.
1985년 7월 27일에는 하프 돔 정상에 마른번개가 쳐서 두 사람이 죽고, 세 사람이 중상을
입은 일도 있다.
요세미티 공원 구조대에 의하면 매년 크고 작은 추락 사고가 300건이나 발생한단다.
쇠밧줄을 잡고 오르는 건 생각보다 힘들고 어렵고 까다로웠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온
힘을 양팔에 모아서 몸을 끌어올려야 한다. 발은 그냥 힘없이 끌려갔다. 금세 팔에서 힘이
빠지고 아파서 쉬어야 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건 경험해 봤어도 팔이 후들후들 떨리는 건
난생 처음이다. 대여섯 발 오르고 쉬고를 반복했지만 팔에 힘이 빠지면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바닥이 저절로 펴진다. 아찔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쇠줄을 꽉 잡았다.
여기서 손을 놓으면 굴러떨어져 죽는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떨어져 죽은 사람들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한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이다가 드디어 쇠밧줄 끝자락을 놓는 순간 여기가 정상인가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안고 다시 가파른 맨 바위 경사를
기어서 한참 더 올라가야 했다. 마침내 앞이 탁 트이는 게 정상이 보였다.
정상에 오른 사람 중에 늙은이는 나 혼자뿐이었다.
은퇴한 나이에 하프 돔에 올랐다는 건 어쩌면 기네스북에 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혼자 웃었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아름다운 경관뿐이다.
하프 돔 끝자락에 일명 ‘다이빙 보드’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다이빙 보드 같기도 하고 넘어진 대문짝 같기도 한 바위 위에 서서 두 손을 번쩍 들어 힘차게
만세를 불렀다. 나이 들어 힘든 고지에 오르니 더욱 감회가 깊었다.
할 수 있다고 마음먹는 순간 해내게 되더라.
유명한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하나도 없다.
장엄한 폭포가 10개나 있고 가파르고 험난해서 올라가기도 힘든 산봉우리도 여러 개나 된다.
그래도 케이블카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다.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면 돈이 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미국인 모두 아름다운 경관은 고대로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자연유산은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