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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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아침 운동길에 나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침저녁 하루에 두 차례 걷는다.

걷기도 오래 하다 보면 숙달돼서 30분 걸릴 거 20분에도 끝낸다. 부지런히 동네 한 바퀴 돌아왔다.

아내가 집 문을 따려고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고 미처 돌리지도 않았는데 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예감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을 나설 때 분명히 잠갔는데, 그만 깜빡했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덜레덜레 아내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섰다. 늘 하던 대로 문을 잠그고 신발을 벗었다.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도 벗어서 장식으로 세워놓은 조선 장롱 위에 올려놓았다.

아내가 부엌으로 가더니 놀란 언성으로 짧게 그것도 빠르게 말했다.

누가 들어왔어.”

말하는 뉘앙스가 겁에 질린 목소리다. 난데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 아내를 바라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이어 다급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갔다.

뒷문이 열려있어!”

아내는 도둑이 들었다는 걸 직감하고 이 층 마스터 침실로 달려 올라간다.

그때까지도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나는 그냥 서서 어리벙벙할 뿐 아내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건장한 남자가 이 층에서 내려오면서 올라가던 아내와 층계에서 부딪치듯 스치고 비켜와 내 앞을

가로질러 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하는 일이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어리둥절하면서 이게 누구지? 하는 생각에 멍하니 서서 보고만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커다란 검은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오른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있었다.

번개처럼 내 앞을 스쳐 간 남자를 보고 아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둑이야~.”

도둑이라는 말에 자동차 시동이 걸릴 때 엔진처럼 심장 박동이 급하게 달아올랐다.

도둑은 100미터쯤 떨어진 길 건너에 세워둔 차를 향해 뛰었다. 나도 따라 뛰었다.

얼핏 자동차 번호판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 찍을

준비를 하려는데 손은 떨리고 왜 그리 작동이 더딘지 애가 타들어 갔다.

남자는 자동차 문을 열고 가방을 벗어 옆좌석에 던져 넣고 몸을 숨기듯 차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급한 대로 차 뒤에서 번호판이 나오도록 사진 두 컷을 찍었다. 시동을 건 남자는 차를 몰고 다급히

사라졌다.

 

마스크를 한 옆집 미세스 휄슨이 휴대폰으로 경찰과 통화하면서 우리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이미 경찰에 신고하는 중이다. 미세스 휄슨에게 사진에 찍힌 차량 번호를 읽어주면서

경찰에게 보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세스 휄슨과 미처 몇 마디 정황을 나누기도 전에 플랫폼에 열차가

들어오듯 경찰차가 들이닥쳤다.

검은 마스크를 한 경찰관은 한쪽 귀로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무전으로 경찰서에 범인의 차종과 색깔,

차량 번호와 인상착의를 설명해 주고 차량 수배부터 내렸다. 나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말을 조리 있게

하는지 어떤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던 경찰관이 집에 들어서면서

도난당한 물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경찰관을 안내하는 아내 뒤를 따라 이 층으로 올라갔다.

마스터 침실 옷장들 맨 위 서랍 7개가 모두 열려있고 침대 옆 붙박이장도 열려있다.

무엇이 없어졌나 들춰보던 아내가 이것저것 기억해 냈다.

부엌 싱크대 위에 놔둔 핸드백이 사라졌고, 침실에서는 보석 상자가 통째로 없어졌어.”

핸드백에 돈은 없었지만 차 키와 집 열쇠 묶음이 있었고, 보석상자엔 값비싼 보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랍을 들춰보던 아내가 말했다.

구찌 시계 케이스가 없고, 하모니카도 박스째로 없네.”

아내는 없어진 물건이 무엇인지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도둑이 들었던 집은 전과 같지 않았다. 어디엔가 도둑이 숨어 있는 것도 같고, 문을 따고 들어올 것만 같은

생각에 섬찟했다. 잠을 자려고 해도 어려서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듣고 난 날 밤,

눈을 감아도 귀신만 떠다니던 때처럼 불안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달여 만에 알라미다 카운티 검찰청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범인을 체포했는데 도둑맞은 물품과 파손된 기물, 수리비를 청구하라는 통지서였다.

사실 도둑이 우리 집에 들어왔어도 값비싼 물건을 가져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부엌에서 밖으로 나가는 뒷문을 어겨 부수고 들어오는 바람에 수리비가 곧 많이 들었다.

도둑맞은 물건 가격과 수리비를 합쳐서 2천여 달러는 될 것이다.

인터넷으로 카운티 법원에 들어가 케이스 번호를 입력하고 범인의 신변을 조회해 보았다.

범인은 1974년생으로 백인이다. 갈색 눈과 갈색 머리, 키가 5‘11“, 체중이 185파운드나 나가는 건장한 남자다.

남자는 10여 차례의 범죄 기록을 보유한 상습범이었다.

1급 절도로 기소되어 산타리타 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보석금 500달러를 내고 풀려나와 있는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검찰청에 보낼 서류를 책상 위에 놓고 며칠을 고민했다.

범인에게 배상을 청구한들 배상해줄 능력이 있는 남자도 못 된다.

오히려 배상해주기 위해 또다른 범죄를 저지를 것이 아니겠는가?

범인에게 배상을 청구하는 대신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절차를 밟게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적 사법 절차는 범인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형벌보다는 재범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교육을 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절차를 말한다.

아내와 의논한 끝에 우리의 뜻을 적고 서명했다.

 

 

낮 손님 (2021년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수필 당선작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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