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의 ‘카사바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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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맨날 만나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덜레덜레 나갔다.

친구는 책 한 권 크기의 우편물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우편물을 한국에 보내려니까 우편물 속에 밧데리가 들어있어서 거절당했단다.

한국에 언제 가느냐면서 이거 한국 휴대폰인데 자기가 한국에 갔을 때 아는 분이 머무는

동안 사용하라고 빌려준 전화기란다.

지인이 대한항공 기장인데 일산 대화동에 산다면서 한국에 가는 길에 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친구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딸은 백인 교사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잘 산다.

지난해에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외국인 학교 교사직 자리로 옮겨갔다.

친구는 손주와 딸도 볼 겸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지인이 빌려준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서 잘 쓰기는 했다만 돌아올 때

미처 돌려주지 못했다.

휴대폰에는 밧데리가 장착되어 있어서 우편물로는 배송이 안 되지만 휴대하고

비행기 타는 건 허용된다.

나는 우편물을 전해 주기로 했다.

 

한국에 가자마자 우체국에 들러 들고 온 우편물을 붙였다.

5,000원을 지불했다는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두어 달 살다 보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친구가 맨날 만나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덜레덜레 나갔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내게 5달러를 건네주면서 우편 요금이란다.

“5,000원이면 5달러잖아요.”

나는 그때서야 생각났다. ‘내가 우편물을 붙여주었지!’

5달러를 주니까 받기는 받았지만, 기분이 떨떠름했다.

왜 기분이 불편하지?

나는 영수증을 카톡으로 보내면서 영수증이 보냈다는 증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수증을 받아본 친구는 청구서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친구는 건축과를 나와서 설계도 그리는 걸로 먹고 살았다.

건물을 완성하고 나면 이런 모양이 될 거라면서 건물을 천연색으로 그리고 가로수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까지 그려 넣으면 정말 그럴듯한 그림이었다.

건물은 규격이 반듯반듯하고 창문도 데모 반듯하게 그렸다.

친구는 매사 꼼꼼하고 무엇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빠짐없이 있어야 하는 줄로만 아는

성격이다.

 

나는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가 생각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여행 갔을 때 가우디가 직접 지었다는 카사바트요 집을 둘러보았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가우디의 철학처럼 집 외장부터 각진 곳은 하나도 없었다.

집 안에 들어서면 바닥이며 천장, 드나드는 문, 창문 할 것 없이 모두 네모나 각진 모서리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었다.

모두 둥글고 유선형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모양들이어서 보기에 편안했다.

네모나고 각진 창문은 우리에게 긴장과 강박 관념으로 다가오는데,

둥글고 흘러가는 물처럼 구불구불한 곡선은 부드럽고 평온하게 보인다.

가우디는 집을 지으면서 집에 어울리는 가구도 직접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테이블이며 의자들이 하나같이 둥글둥글한 부드러운 곡선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구들을 쓰면서 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

 

친구처럼, 나도 일산에서 사는 아는 분에게 우편물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분 역시 영수증을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왔다.

나는 영수증을 보면서 청구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얼마가 들었는지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붙여줘서 고맙다는 생각만 들었다.

더치페이가 실용적이기는 하지만 운치를 겸하지는 못한다.

위대한 예술가 가우디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여운이 있는 아름다운 삶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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