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한국을 자주 다니다 보면 가끔 다른 좌석의 한국인 승객이 내게 다가와
아는 사람들끼리 동석하고 싶으니 자리를 바꿔줄 수 없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싫다”라고 대답하면 인정머리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고 바꿔주기에는 내 좌석
위치가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한국인들은 승객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일이 성사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 요구를 거절한 당사자는 부탁했던 사람과
마주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게 된다. 결국, 즐거워야 할 여행에 흠집이 생기고 만다.
똑같은 경우에 미국인들은 승객이 승객에게 직접 부탁하지 않고 스튜어디스에게 문의한다.
한번은 스튜어디스가 내게 다가와 좌석을 바꿔줄 수 없겠느냐고 묻기에 마침, 내 좌석의
위치가 별로 마음에 드는 자리도 아니어서 그렇게 해 주었다.
잠시 뒤에 스튜어디스는 고맙다면서 와인 한 병을 선물로 가져왔다.
중계자는 가운데서 전하는 말을 여과시켜 주기 때문에 양쪽 다 기분 상할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설혹 내가 거절했다손 치더라도 누가 부탁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니까 누구에게도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
한국인들의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는 관습은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기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잘못하다가는 시비로 번질 수도 있다.
지난번 한국에 갈 때의 일이다.
기내식사가 끝나고 실내 불이 꺼지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나는 의자를 뒤로 눕혔다.
이코노미석 의자를 눕혔다고 해 봐야 고작 허리가 뒤로 반쯤 제껴진 상태다.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친다.
뒤돌아 봤더니 젊은 한국인 청년이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의자를 다시 접어달란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의자 등받이를 세웠다. 식사가 끝나고도 남았을 만한 시간이 흘렀다.
잠 좀 자야겠기에 의자를 뒤로 눕혔다.
다시 어깨를 톡톡 친다. 이번엔 또 뭔가 하고 돌아보았다.
자기가 컴퓨터를 보는 중인데 내가 의자를 눕혀놔서 작업에 방해가 된단다.
나더러 옆자리가 비어 있으니 그리로 옮겨 앉아 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아! ‘이 청년 매너를 가르쳐 줘야지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스튜어디스 호출 버튼을 눌렀다.
스튜어디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더러 옆좌석으로 옮기라고 하지 말고
자기가 빈 옆자리로 옮겨 앉으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부탁을 들은 스튜어디스는 스튜어디스들이 모여있는 칸막이 안으로 쪼르르 되돌아갔다.
잠시 후에 다시 내 뒷좌석 승객에게 다가와 나의 말을 전했다.
스튜어디스가 신참이어서 고참 언니에게 물어보고 달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승객이 승객에게 직접 대놓고 부탁하면 상대방 기분을 해칠 수가 있어서 모든 문제는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서 해결해야 한다.
여객기에서 스튜어디스들이 가장 싫어하는 승객의 행동은 여러 가지다.
내가 겪었던 것처럼 다른 승객에게 조언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거나
기침하지 말라고 하는 승객이다. 하지만 승객이 직접 조언하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직접 조언하기보다는 스튜어디스에게 상황을 알려야 한다.
어떤 승객은 선반 위 다른 승객의 수하물을 허락 없이 옮기기도 한다.
이유는 선반에 자신의 수하물 넣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선반에 수하물 넣을 공간이 없다면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지 남의 짐을 함부로 이동시켜서는 안 된다.
스튜어디스를 부를 때 옷을 잡아당기거나 손가락으로 오라고 제스쳐를 쓰거나 “저기요”하고 소리로 부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모든 스튜어디스는 이런 행위에 불쾌감을 느낀다.
아무리 지척 간에 있는 스튜어디스라도 손을 들거나 스튜어디스 호출 버튼을 눌러서 오게 해야 한다.
스튜어디스가 밀고 가는 카트 위에서 간식과 음료를 직접 집어가면 안 된다.
가끔 스튜어디스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직접 손을 뻗어 음료를 가져가는 승객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스튜어디스가 배열해 놓고 기억하는 음료나 간식을 엉망으로 만들기 쉽다.
원하는 물건이나 필요로 하는 게 있으면 호출 버튼을 눌러야 한다.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 스튜어디스 호출 버튼으로 10번 불러도 군말 없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