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청하고 따스한 게 전형적인 캘리포니아의 봄 날씨다.
작은 누님 기일이 돼서 산소엘 들렸다.
미국 산소라는 게 봉분 없이 평평하게 되어있어서 비석도 네모 번듯하고 납작하다.
그것도 간격은커녕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촘촘히 들어선 형국이다.
군대 연병장에 가로세로 줄을 맞춰 늘어서 있는 게 열병식을 사열하는 것 같다.
누님의 산소는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어서 찾아가려면 여러 산소를 지나가야 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걸어간다는 게 실은 누워있는 시신 위를 밟고 다니는 격이다.
산소를 밟고 다니는 게 죄스러워서 피해가면서 디디려면 비석을 밟아야 한다.
남의 시신을 밟고 또 비석을 밟아가면서 걷는 게 한국인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죄의식마저 느낀다.
우리네 조상숭배 사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만 미국인들은 모든 걸
과학이라는 잣대로 해석하니 우리와는 다른 결론에 이른다.
시신은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미국인들에게는 구태여 넓은 땅을 차지할
이유가 없다.
그저 한 사람 겨우 누울 자리만 차지하면 그로서 족하다.
그것도 100년 후에는 자연소모 되어도 그만이라는 서류에 서명한다.
미국은 대륙이다.
어딜 가나 땅이 넓어서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가도 가도 끝없는 빈 벌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화물열차를 만나면 연결량이 끝없이 길다.
몇 칸이나 달고 가는지 세어 보다가 그만둔 적이 여러 번이다.
보통 화물칸 120~140량을 매달고 달린다. 앞에서 기관차 3량이 끌고 중간에 2량이
있는가 하면 맨 뒤에 기관차 3량이 밀고 간다.
땅이 넓으니 화물차도 그에 걸맞게 길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죽은 사람은 한 평 이상은 차지할 수 없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대통령도 노동자도 모두 한 평 땅으로 만족해야 한다.
누가 만든 법규인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는 엉뚱하게도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이 번창한다고 해서 조상의 묘를
거창하게 꾸민다. 왕릉부터 지금의 동작동 대통령 묘라든가 재벌의 묘는 어마어마하게
꾸려놓았다. 묘 하나가 차지한 땅만도 수천 평이다.
땅덩어리도 좁은 나라에서 죽은 자가 차지하는 땅치고는 너무 넓다.
미국 국토를 한국 국토에 비하면 99배나 넓다.
땅이 넘치고 남아도는 미국에서 죽은 자가 차지하는 땅은 겨우 한 평인데,
땅이 부족해서 오밀조밀 좁게 사는 한국에서는 죽은 자가 땅을 마음껏 차지하고
누워있어도 된다니 이거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