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아침햇살을 듬뿍 받으며 호숫가를 걷는다.
신선한 공기가 가슴에 메어질 듯 가득 차온다.
호수는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정원.
호수 정원이 주인을 불러내어 자랑하듯 보여주고 싶어 한다.
옅은 바람에도 물결은 찰랑대고 물닭은 거북선처럼 둥실둥실 떠서 달린다.
나뭇가지엔 엷은 녹색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겨우 내내 사라졌던 새소리가 새롭게 들린다.
봄은 새들에게 새로운 호르몬을 샘솟게 하나 보다.
나름대로 미성으로 짝을 유혹한다.
지저귀는 소리가 하도 간절하고 애처로워서 안달 복걸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새는 낭랑 18세인가 보다.
기러기가 한 쌍씩 짝을 지어 날아간다.
앞에서 꺽–꺽– 소리 내면 뒤에서 꾹–꾹– 하면서 장단을 맞춘다.
일 년도 넘게 족막염인가 뭔가 하는 병으로 발뒷꿈치가 아파서 걷지 못했다.
재활 치료도 받아보았고 상담 치료도 해 보았지만 낫지 않았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하는 강의를 듣고 나름대로 혼자 고쳐보기로 마음먹었다.
서서 있는 시간을 줄이고 주로 의자에 앉아서 지냈다.
발맛사지를 하면서 신발도 새것으로 바꾸고. 신발에는 아치서포트를 넣었다.
아치서포트는 신발을 신고 바닥을 디딜 때 뒷꿈치로 몰리는 힘의 압력을 발바닥 중앙에
움푹 파인 아치로 분산시켜 줌으로써 발뒷꿈치를 압력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아치서포트를 쓰고 나서 자유를 찾았다. 마음껏 걷는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걷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다.
햇볕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으니 기분도 상쾌하다.
언제부터였더라 걷는 걸 운동으로 치부하기 시작한 게?
요즈음은 별게 다 운동이다.
한번은 연로한 노인들이 기거하는 양로원에 가 보았는데 마침 운동시간이었다.
운동 강사가 앞에 서 있고 학생으로 윌체어를 탄 노인 할머니들이 다섯 명 앉아서
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멀찌감치서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사가 오른손 손바닥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따라 해 보라고 했다.
할머니들이 윌체어에 앉은 채로 오른손 손바닥을 접었다, 폈다를 따라 했다.
이런 동작도 힘에 겨워서 겨우겨우 하는 노인들이다.
강사가 오른손 접었다 폈다 다섯 번. 바꿔서 왼손 접었다 폈다 다섯 번.
양로원이라고 해서 개인 운동시간이 공짜일 리 없다.
할머니들은 인생 마지막 무대를 운동시간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강의료 한 푼 내지 않고 걷기를 배웠고 지금은 걷기 선수다.
나 어렸을 때는 수영하러 서울역에서 한강 백사장까지 걸어갔다.
겨울엔 한강까지 걸어가서 스케이트도 탔다.
능금 먹으러 자하문 밖으로 걸어가기도 했고, 걸어서 불광동 진관사로 소풍 간 기억도 난다.
정릉, 도봉산 천축사, 동구릉도 다 걸어서 소풍 갔던 곳이다.
그만해도 우리 세대는 약과다.
우리 할아버지는 춘천에서 서울을 걸어 다니셨다.
함석헌 옹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 선생께서는 아침 일찍 걸어서 인천에 갔다가 일 보고
돌아서 다시 걸어 노량진 집까지 오셨다니 발품이 얼마나 고됐을까.
지금은 자동차 시대여서 걷는 걸 잊고 산다. 하지만 사람의 근본은 걷는 거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걸 뭐 대단한 것처럼 운동이니 뭐니 하다니…….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전면에 펼쳐지는 전경이 번갯불 치듯 빨리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긴장하고 초조해서 앞만 보일 뿐이다.
차에서 내리면 마치 방에서 TV를 보다가 나온 것처럼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 나는 게 없다.
그러나 걸어가면서 보는 광경은 다르다. 걸어가면 사방을 완벽하게 본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보는 걸 좋아했다.
학교에서 집에 늦게 오면 엄마가 물었다.
“오다가 뭘 보느라고 늦었니?”
오면서 보았던 장면을 기억 속에서 하나씩 꺼내 들려주곤 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기억력은 걸으면서 입력되게끔 짜여 저 있기 때문이다.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걷을 수 있다는 건 살아 숨 쉰다는 증거이고, 해맑은 햇볕을 듬뿍 끌어안을 수 있는
행복이며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특혜다.
기억과 상기(想起)를 이뤄낼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