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참 빨리 흐른다.
오전에 카이저 병원 안과에 가면서 너무 일찍 집을 나오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돈다.
병원 근처 옛날에 살던 집이나 훑어보고 가기로 했다.
우회전으로 해서 좌회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도 익숙하다.
그러니까 그게 결혼하고 2년째 되던 해였다.
아내가 결혼 전에 저축해 놓았던 돈으로 집 가격의 20%만 내고 나머지 80%는 은행에서
융자받는 형식으로 집을 사기로 했다.
집을 사러 다니다가 샌리안드로에 오래된 집을 하나 찾았다.
마음에 쏙 드는 집은 아니었지만, 방이 다섯에 그런대로 넓은 집이었다.
서류상 계약하고 서명도 했다. 이제 예약금만 지불하면 계약이 끝나는 거다.
마침 주말이어서 은행이 닫혀있었다. 월요일에 예약금을 치르기로 했다.
주일에 교회에 갔다가 오는 길에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새집을 짓고 모델하우스를
오픈한다기에 가 보았다. 넓은 공원까지 낀 동네 하나를 몽땅 새로 짓고 있었다.
자그마치 100여 채는 되고도 남았다.
그때 우리 부부는 모델하우스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난생처음 보는 모델하우스는 우리가 반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방마다 고운 벽지를 발라놓고 예쁜 가구들을 진열해 놓았다.
침대도 으리으리한 침대에다가 미닫이문이 통짜 거울로 되어있고 부엌 찬장에
그릇까지 너무나 아름다워서 연상 사진을 찍어 댔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계약해 놓은 집을 무르느라고 복덕방 미국 여자에게 사정, 사정했다.
그리고 새집이 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사 들어갔는데 텅 빈 집이 모델하우스하고는
전혀 달랐다. 우리가 상상했던 집이 아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꾸려야 하는 집이다.
앞뒤로 마당에 잔디도 심고 나무도 심고 앞마당을 그럴듯하게 꾸리느라고 돈과 시간과
노동을 퍼부어야 했다.
집안 살림도 갖추랴 정말 바쁘게 살았다.
서른 살 젊은 시절이어서 피곤하지 않았다. 자고 깨면 싱싱했다.
그 집에서 둘째를 낳고 샌리안드로 새집으로 이사했다.
샌리안드로 새집에서 셋째를 낳고 지금 사는 카스트로 밸리 새집으로 이사했다.
10년 사이에 세 번 이사하고 세 번째 집에서 주저앉은 게 40년이다.
오늘 내가 찾아가 본 우리의 첫 번째 집은 옛집 그대로이다.
지붕이 빨간 기와집이었는데 검정 루핑 지붕으로 바뀌었고 앞마당도 내가 꾸려놓은
앞마당은 사라졌고 낯선 모습이다.
집 옆 울타리에 내가 만들어 놓은 게이트 그리고 동네와 공원도 여전하다.
어느새 50년이 지났어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미국은 천천히 바뀌는 나라임을 여기서도 보는 것 같았다.
옛집을 보면서 내 젊었을 때가 그려지면서 야릇한 기분이 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