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컴퓨터로 이메일을 체크하던 중이었다.
‘황복희’라고 쓰여 있는 낯선 이메일을 한 통 발견했다.
클릭해서 읽어보니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종사촌 누이동생이다.
총각 때는 친척 집도 가깝게 지내서 늘 드나들었다.
나는 이종사촌 누이동생을 “복희”라고 이름만 불렀다.
그리고 세월이 물 흐르듯 다 흘러버렸으니, 너도 늙고 나도 늙었다.
갑자기 ‘황복희’라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냥 ‘복희’라고 했으면 됐을 것을 ‘황복희’라니?
‘황복희’는 무슨 ‘황복희’. 그냥 ‘복희’지.
평생 기억에 남는 얼굴이 있는데 ‘복희’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내용이 별것은 아니지만 내 책 ‘LA 이방인’을 읽고 사진도 보았단다.
이메일 주소가 있기에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나는 입가에 미소가 절로 흘렀다.
한편 뭐라고 답장을 해줘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이메일이 또 와있다.
그게 그 소리이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내가 혼자 된 줄도 모르고 있었단다.
“혼자 되다니?” 소설 속의 내용을 나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다.
남동생네 딸 주희가 영어 연수차 미국에 와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 인사시켜 주면서 ’복희’ 딸이란다.
“복희 딸이라니?” 까맣게 잊고 살던 이름 ‘복희’ 딸이라니. 나는 깜짝 놀랐다.
얼굴을 얼핏 뜯어보았다. ‘복희’ 얼굴이 묻어 있었다.
복희 딸은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어 연수차 버클리에 와 있단다.
그때 복희를 간접적으로 보았다.
답장을 써 내려갔다.
『‘복희’가 누구냐? 사랑하는 동생이 아니더냐.
사과꽃 같은 얼굴에 웃음이 헤퍼서 조그만 농담에도 까르르 웃던 얼굴이 생각난다.
그때가 좋았지.
오랫동안 바쁘게 사느라고 잊고 지냈구나.
미나 엄마와 만나면 네 이야기 한단다. 내 기억에는 통통한 복희 그대로인데…….
세월은 참 빠르지. 어느새 인생 다 흘려보냈으니.
우리가 아는 친척들은 모두 우리보다 나이 많은 노인이 되어 있더구나.
주변에 노인 친척들만 있으니, 그분들과 이별 예식 치를 일만 남은 것 같다.
나는 혼자가 아니란다. 책에서 읽은 건 소설이니 사실로 믿지 마라.
딸 결혼할 때는 나를 부르려무나.
복중에 제일은 오래 사는 것이니 건강하게 지내 기 바란다.』
답장을 써놓고 보낼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은 왜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