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일본 열도 크루즈 여행 떠나던 날 김포 공항에서부터
장맛비가 내리던 것이 참담한 수해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은 하늘이 파랗고 말짱한데 한국 중부지역은 물 폭탄이 퍼부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고난을 겪는 분들이 많은데 나 홀로 즐기는 것도 도리는 아닙니다.
여행으로 즐거운 장면은 잠시 접어두고 애도의 분위기에 동참합니다.
‘자식 없는 게 상팔자’
아내는 딸네 집 챙기느라고 바쁘다.
딸네 집에는 손자 손녀가 있고 딸은 즈네 자식 챙기느라고 정신없이 돌아간다.
어미로써 못 본 척하고 지낼 수도 없다.
아내는 손자 손녀 학교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과외활동에 태워다 주고 뒷바라지하는 일로
바쁘다. 일도 일 같지 않은 게 시간을 어겨서도 안 되는 엄격한 일이다.
아내가 하는 일은 노는 날도 없고 방학도 없다.
보다 못해서 내가 한국에 들어가는 길에 아내와 함께하기로 했다.
손주 애들 때문에 안 된다는 걸 거의 강제로 끌고 오다시피 했다.
“죽는 사람이 이 사정 저 사정 보다가 언제 죽니?”
한국에서 사는 동생네도 바쁘다. 손자 3명 봐주느라고 온종일 붙어서 산단다.
밥이나 같이 먹자고 했더니 토요일만 시간이 있고 일요일은 저녁 시간만 유효하단다.
토요일 점심시간으로 정했다. 금방 전화가 와서 저녁 시간으로 고치잖다.
나야 시간이 넘쳐나는 사람이겠다 그러라고 했다.
토요일 저녁에 동생 혼자서 덜레덜레 왔다. “제수씨는 어떻게 하고 혼자 왔니?”
갑자기 딸이 일이 생겨서 손주들 봐주느라고 오지 못한단다.
제수씨는 내 처보다 더 바쁘다.
동생 말로는 요새 젊은이들이 아이 안 낳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면서 웃는다.
나는 아이들 기를 때 할머니 할아버지 없이 키웠다.
동생네도 할아버지 할머니 없이 키웠다.
아내는 집에서 아이들 키우고 나는 일해서 돈 벌어 오면서 살았다.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아이들 과외활동도 시켜주었다.
아이들 방과 후에 학교에서 하는 운동 경기에 참석시키고
주말이면 사교육 바이올린 교습도 10년씩이나 시켰다.
별로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은데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이 돈 벌어야 하고 아이들은 과외 공부 가지 수가 많아졌다.
미국에서 사는 손주는 방과 후에 각종 운동 경기장으로 달려가고 손녀는 댄싱 클럽에,
피아노 레슨 받으러 간다.
막내딸은 욕심이 많아서 아이들 과외 수업도 한 가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피아노 레슨
끝나면 댄싱 클럽에 태워다 줘야 한다. 그것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면서까지.
한국에서 사는 동생네는 우리보다 더하다.
아이들 학교 끝나면 과외 수업을 시킨다나 뭐라나.
그것도 돈 많이 드는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그 학비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되는데…….
내가 듣기에도 앞이 안 보인다.
동생네 부부는 미국 시민권자다. 손자들 봐주느라고 한국에서 산다.
동생은 웃으면서 하소연한다. “머지않아 미국에 가서 아이들 교육시키라고 할 텐데!”
동생은 미국에 안 가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한국에서는 월남전 참전 수당도 받고 병원도 거저지만, 미국에 가면 모든 게 돈이다.
들어오는 수입은 없고 나가는 돈만 있는 데다가 자동차 운전도 해야 하니 골치 아프단다.
제수씨 혼자 가라고 하고 자기는 한국에서 살겠단다.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자식 일이라는 게 끝이 없는 건데, 한 번 얽매이면 헤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빛이 나는 일도 아니면서…….
미국 인구조사국 데이터 분석이 나왔다.
40세 미국인 미혼 비율이 1980년 6%에 불과하던 것이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면서
2010년 20%로 2021년에는 25%로 나타났다.
1980년대 내가 아이들 기를 때도 만만한 세상은 아니었지만, 모두 그러려니 하면서
나도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아이 나서 교육시키기에는 버거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자식 없는 게 상팔자라더니 정말 그런 세상인가 보다.
인터넷에 숙달된 요새 애들은 일찌감치 득도(得道)해서 아이 안 낳는 상팔자를 선택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