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회관 콩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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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간만에 콩국수 집을 찾았다.

날씨가 덥기도 했지만, 콩국수를 먹고 싶었다.

삼성빌딩 뒤편에 있는 유명한 진주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진주 식당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진주회관이란다.

회관이면 어떻고 식당이면 어떠냐, 맛만 좋으면 됐지.

거의 30년 만에 콩국수 집을 찾아가면서 그 집이 그 자리에 있기나 하려나?

의심 반, 기대 반이었다.

나의 의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멀리서도 간판이 보이는데 옆문, 앞문, 사이드 문이 변함없이 존재한다.

이 자리는 재개발도 안 하는지 옛 모습 고대로다.

삼성 직원들이 뒷마당에 모여서 담배 피우는 거나, 좁은 땅에 주차한 차들이나 변한 게 없다.

젊어서 아내와 함께 소공동 롯데 호텔에 투숙했을 때도 아내를 데리고 이 식당에 왔었다.

콩국수 맛을 보여주려고 했었는데 그때는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 때여서 콩국수는 안 해서

미안하게도 김치 볶은 밥을 먹었는데 아내는 기억이 없나 보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놀랐다.

어쩌면 변한 게 이리도 없을까? 4곳 홀의 위치와 테이블 의자 배치가 예나 지금이나

고대로다.

그동안 테이블도 갈지 않았는지 그 테이블 그 의자 색깔이며 생김새가 똑같고 배열한

위치도 변함이 없다.

나는 식당 안 중간 홀 맞은편에 화장실 문이 보기 싫어서 피해 가면서 자리 잡았었는데,

화장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도 고대로이다.

한가지 변한 게 있다면 돈 받는 여자가 젊은 여자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우리가 들린 때가 오후 4시였다.

늦은 시간이 돼서 운 좋게도 테이블 빈자리가 한두 군데 있었다.

앉자마자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주문부터 받는다.

콩국수 한 그릇에 15천 원이라면서 선불이란다.

콩국수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가격 가지고 불평하는 손님도 없거니와

서비스가 홀대받는 것 같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싫으면 나가라는 배짱 두둑한 장사다.

지폐를 꺼내 주기가 무섭게 콩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불과 1분 사이에 배달된 콩국수다.

속도전을 펼치는 종업원들의 몸놀림으로 보아 손님 회전율을 짐작게 한다.

자그마치 하루에 4,000그릇을 판다니까? 4000 X 15000 = 6천만 원 매상이다.

오후 4시인데도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니 점심시간에는 오죽할까?

30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친구 사무실이 서소문동에 있어서 점심 먹으러 자주

들렸었지만 길게 줄을 서거나 식당에 손님이 꽉 차지는 않았었다.

그때 들었던 소문으로는 식당 주인 형님이 영등포에서 콩국수 집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고소한 맛이 나는지에 관한 콩국수의 비밀은 안 가르쳐준다고 했다.

마치 코카콜라의 콕 쏘는 맛은 극비에 속해서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과 같다.

이건희 회장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에게 병원으로 콩국수 심부름을 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진주회관 포장 단골이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유명 인사들이 들렸다는 사진이 줄줄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것 같다.

 

커다란 콩국수 그릇에는 걸쭉한 콩국수 국물에 국수가 잠길 듯 말 듯 보일 뿐 고명도 없다.

하다못해 달걀 반 토막은커녕 깨도 뿌리지 않은 민낯의 콩 국물이다.

국물 하나로 맛의 승부를 걸겠다는 당돌하고도 단호한 태도로 보였다.

사이드 디쉬로는 달랑 시뻘건 김치 하나뿐이다.

단팥죽 국물만큼 걸쭉한 콩 국물은 고소하기가 땅콩보다 더 고소하다.

젓갈로 국수를 먹을 만큼 집어 콩 국물을 듬뿍 묻혀서 입에 넣으면 고소한 맛이 입안으로

가득히 번진다. 콩국수의 진짜 맛을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달지도 짜지도 않은 이른바

콩국수의 표준이라고 할만한 맛이다.

면발이 일반 밀국수와는 달리 전분으로 뽑은 자장면 면발보다 더 차진 것으로 보아

스파게리나 마카로니 면발인 것 같다.

콩 국물만 팔기도 한다. 2인분에 15,000원이다.

우리가 들렸을 때는 콩 국물은 다 팔리고 없었다.

 

반세기가 넘도록 한 자리에서 같은 맛으로 떼돈을 버는데 어째서 모방 비즈니스가

탄생하지 않을까?

콩국수의 고소한 맛이 그렇게도 흉내 내기 어렵다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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