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에서 받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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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픈데 남이 보기엔 멀쩡한 병이 있다. 환자를 속상하게 하는 병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겨울철이면 감기가 단골손님처럼 들렸다가 슬며시 사라지곤 했다.

한 해도 거르는 해가 없었다. 어떤 해에는 두어 번씩 찾아왔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감기만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감기보다도 센 독감이 나타났다.

독감은 앞에 이름표를 달고 왔다. 돼지 독감, 홍콩 독감 뭐 이런 식이다.

나의 경우 감기나 독감에 걸리면 그냥 그걸로 끝나는 수도 있지만, 까딱 잘못하면

감기가 기관지염으로 넘어간다.

기관지염은 기침을 몹시 하는 증세다.

가래가 끓는 것도 아니고 콧물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마른기침이 참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말하면 기침이 나서 말을 못 할 지경이다. 가만히 참고 있으면 조용하다가도 말하면

기침이 기다렸다는 듯이 쉴새 없이 튀어나와서 말을 못 하게 한다.

이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그랬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침이 낫지 않고 한 달을 계속하는 바람에

가난 속에서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수도 의대 병원엘 갔던 생각이 난다.

 

기관지염 기침은 그냥 놔둬도 대강 2~3주 정도 지나면 그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병원에 예약하면 2~3주 후로 날짜를 잡아 준다.

2~3주 후면 낫는 병이니, 병원에 갈 필요가 없게 된다.

그사이를 못 참겠기에 별의별 약을 다 사다 먹어보았다.

평생 따라다니는 지병인데 무슨 약인들 써보지 않은 게 있겠는가?

아무 약도 약발은 없었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 가장 잘 듣는 것 같은 약이 있는데 이름하여 크레오멀존이라는

기침약이다. 별로 알려진 제약회사에서 생산되는 약도 아니고 약 자체가 유명한 약도

아니어서 그런 약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아무튼 이 약이 내게는 그런대로 기침을 멎게 하니 나는 이 약만 사다 먹었다.

 

기관지염이라고 하는 게 자주 있는 병이 아니어서 1년 아니면 2년 만에 발병하곤 한다.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아이쿠 올 게 왔구나하는 식이다.

그때서야 약을 사러 약국에 가면 여러 종류의 기침약은 많아도 내가 찾는 크레오멀존은

없다. 찾아다니다가 결국은 못 찾고 제약회사에다가 전화를 걸었다.

제약회사가 가르쳐 준 약국에 가서 겨우 찾아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서 예비로 2병을 샀다.

 

세월은 가만히 있지 않고 달려간다. 세월만 달려가는 게 아니라 과학도 발전해 간다.

독감 예방 주사라는 게 등장했다.

독감 예방 주사는 감기나 독감만 예방해 주는 게 아니라 내게는 기관지염까지 예방해

주었다. 10월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 나면 그 해는 끄떡없이 넘어갔다.

사람은 간사해서 예방 주사 덕분에 기관지염에 안 걸리는 것도 모르고 내 체질이 개선된

거로 착각해서 예방 주사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냈다.

 

지난 7, 일본 열도 한 바퀴 돌아오는 크루즈 여행에 다녀왔다.

한국은 장마가 심하게 지나가는데 크루즈 여행이 비 때문에 망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지금 세상은 어떻게 된 건지 장마라고 해도 국지적이어서

폭우가 쏟아지는 곳만 쏟아지지, 다른 지역은 멀쩡한 것처럼 일본은 해가 쨍하고 났다.

심지어 덥기까지 해서 팥빙수를 사 먹어야 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듯이, 즐거운 일이 있으면 괴로운 일도 있듯이, 우리 부부는

독감에 걸렸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했는데 우리는 개 만도 못 했던 모양이다.

덜커덕 독감에 걸리고 말았으니. 독감은 미열과 몸살을 동반했다.

하루 앓고 났더니 몸은 괜찮은데 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참을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크루즈로 항해하면서 알게 된 건데 승선 인원 중에 많은 사람이 기침하는 거로 봐서

독감에 걸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환자는 매일 증가했다.

하선할 때쯤에는 한 사람 건너 한 사람씩 기침해 댔다.

 

한국에서 독감이 유행한다는 뉴스는 크루즈 떠나기 전부터 듣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6년 만에 가장 독한 여름 감기와 독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질병관리청 조사에서 일부 감기는 코로나보다 감염자가 더 많이 나온단다.

여름 감기, 독감 입원환자 수는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을, 겨울에 기승을 부리고 여름엔 수그러드는 바이러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란다.

한국에서 자주 유행하는 감기, 독감은 7가지다.

리노 바이러스, 메타뉴모 바이러스, 보카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호흡기 세포 융합 바이러스(RSV),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독감) 등이다.

엄격한 코로나 방역으로 감기,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최근 사회생활은 늘어났으니 더 쉽게 전파되고, 더 크게 유행한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도 매 한 가지이다.

내게 들어온 독감은 질질 시간을 끌더니 기관지염으로 넘어갔다.

기침이 쏟아졌다.

 

크루즈 여행에서 선물 받은 독감과 기관지염을 지니고 미국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 병원에 예약해 봐야 2~3주 후에나 의사를 볼 수 있겠기에 전화로 간호사에게

들어보라는 식으로 끝없이 기침해 댔다.

의사에게 전하겠다더니 약이 처방됐다. 처방된 약을 먹고 3일 만에 낫다.

그때서야 생각났다. 10년 전에 사다가 모셔둔 트레오멀존이란 약이 있다는 것을.

안방 침대장 속에 고이 모셔둔 약을 꺼내 보았다.

10년 전에 넣어둔 줄만 알았는데 약병에 적혀 있는 날짜를 보니 불과 6년 전에 사둔

약이다. 그것도 유효기간이 202011월이니까 지나도 한참 지난 약이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도 믿을 게 못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같이 뉴질랜드엔가 가서 골프도 치고 함께 지내놓고도

그런 사람 기억에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하는 말도 어떠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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