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온다.
미주 8개 한인 은행에서 일제히 한국으로 무료 송금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광고한다.
명절에 무료 송금 서비스는 연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무료 송금이란 한국에 송금할 때는 수수료가 붙기 마련인데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는
수수료 없이 무료로 송금해 주겠다는 의미이다.
미국에서도 추석을 쇠는가? 미안하지만 미국엔 추석이 없다.
추석이 공휴일도 아니고 일반 여느 날과 같이 정상 근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포들은 한국에서 사는 부모나 친지들에게 송금한다.
예로부터 미국은 잘 사는 나라여서 고국으로 송금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많은 교포가 넉넉히 살면서 명절 송금을 하는 게 아니라 쪼들리게 살면서도 송금은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송금하는 경우가 많다.
옛날 한국이 가난하게 살 때는 송금하는 돈이 빛을 발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섣불리 보냈다가는 흉잡히기 딱 좋다.
어떤 면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돈을 더 잘 쓰면서 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보는 돈의 개념과 미국에서 보는 돈의 개념이 다른 것도 이유이다.
한국은 나서 자란 곳이어서 친척이나 친구 말고도 친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급한 일이 발생하면 도와주려는 사람도 많다.
아는 사람에게서 돈을 꿀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타향이어서 아는 사람이 적은 데다가 개인주의가 발달해서 급한 일이
터지더라도 섣불리 도와주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은행이 아니면 돈을 꿀 데가 없다.
그만큼 미국에서 사는 교포들은 돈을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귀한 돈이어서 한국에 가서도 돈 쓸 때면 벌벌 떨면서 쓴다.
한국에서 13만 원은 우습게 쓴다. 별것 한 일도 없는데 없어진다.
미국에서 100달러는 큰돈이다. 이것저것 하는 게 많다.
탈북인들의 유튜브를 보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북한에서 사는 가족에게 정식으로 송금할 수 없어서 부로커를 통해서 전해준단다.
코로나 전에는 부로커에게 수수료로 30%를 떼이고 전해줬는데
송금이 까다로워지니까 50%를 줘야 한단다. 그것도 지금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서 사는 가족들은 남한으로 탈북한 딸이 얼마나 어렵게
돈을 버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남한에서는 돈을 거저 버는 줄로 착각하고 더 많이 보내라고 재촉한단다.
마치 미국에서 사는 교포들이 한국에서 사는 가족들에게 시달리던 때를 기억나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교포들은 떠날 때를 기준으로 한국을 생각한다.
중간중간 한국을 다녀오면 다녀온 그때로 기준이 바뀔 뿐 생각은 자기가 본데서 머문다.
그동안 한국은 많이 발전했고 매일매일 변한다.
어제 다르고 내일 다르다.
한국의 발전 속도는 미국보다 10배는 빠르게 변한다.
한국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교포들의 사고역량은 엉뚱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
한때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린 근로자들이 보낸 외화가 한국 경제의 밑거름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독일로 떠난 간호사·광부가 부쳐주는 돈으로 가족들이 생계를 잇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한국이 경제 대국에 속하는가 하면 수출도 여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만큼 세계 경제에 이바지하는 바 크다 하겠다.
그런데도 매년 명절에는 한국으로 송금하는 교포 수는 줄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에서 사는 가족이 못 살아서라기보다는 우리의 명절 풍습이 가족을 위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적지만 무엇인가 해 줘야만 마음이 편한 게 우리가 가진 전통 유산이다.
세계은행은 매년 미국에서 해외로 송금한 나라별로 통계를 내는데
해외에서 보낸 개인의 송금액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라고 세계은행은 집계했다.
2위는 611억 달러가 들어온 멕시코였다. 멕시코에서는 관광 수입이나 원유 수출보다
해외 송금을 통해 들어오는 달러가 더 많다.
중국은 261억 달러로 6위, 한국은 78억 달러로 25위다.
해외 송금을 하는 나라들은 모두 가난한 나라들이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에서 졸업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해외 송금이 랭킹에 올라가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유산인 추석 떡을 나눠 먹는 풍습에 기인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