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친구가 죽었다.
미국에서 50년도 넘게 살다가 죽었으니 어느 정도 재산도 있고 하나뿐인 딸도 결혼해서
따로 산다.
과부가 된 친구 부인은 재산은 그대로 놔두고 몸만 한국에 나가서 산다.
한국에서 살다가 잠깐 먼저 살던 미국에 왔는데 만나본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국에서 살더니
10년은 젊어졌다고 한다. 살도 빠졌고 얼굴이 갸름한 게 세련되어 보이더란다.
젊어 보이는 만큼 젊게 살 것이다.
젊었을 때 한국에 들어가면 5성급 호텔방에 친구들을 불러들여 고스톱을 쳤다고 했으니
해방된 지금은 말해 무엇하랴.
여자들은 나이가 들었건 말건 한국에서 살면 몸무게도 빼고 젊어지고 예뻐진다.
또 다른 지인 역시 남편이 죽었다.
아들 둘이 있는데 엔지니어로 성공해서 부자로 잘 산다.
큰아들은 한국 여자와 결혼해서 사니까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정도는 알 것이다.
둘째 아들은 미국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산다.
남편 살아 있을 때도 아들네 집에 손주라도 보러 가려면 전화로 예약하고 가더라도 너무
일찍 도착하면 시간이 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으니 혼자 사는 엄마라고 해서
달리 대우하겠는가.
잘 산다고 해서 미국식으로 사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돈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면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아들들이 알게 모르게 엄마에게 돈을 줄지도 모른다.
아무튼 늙은 과부가 된 부인은 살던 집은 세주고 한국에 나가서 산다.
얼마 전에 미국에 잠깐 왔었는데 엄청 젊어지고 예뻐졌다고 한다.
원래는 뚱뚱했었는데 체중을 빼서 몸매도 날씬하더란다.
그녀를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은근히 부러워했다.
한번 으스대고 한국으로 돌아간 재미를 잊을 수 있겠는가?
요즈음은 사진을 보내오는데 예쁜 얼굴이 40대로 보인다.
그 여자가 그 여자 같지 않은 젊어진 여자 사진을 돌아가면서 보는 주변 친구들의
부러워하는 모습이라니.
자연스럽게 나이 든 노년의 모습을 뭔가 잘못된 현상으로 여기게 하는 순간이다.
노화가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 변화라는 대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극도로 열심히
노력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기에 불편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누님이 한마디 했다.
“속은 그대로인데 겉만 다르면 뭐하노.”
나하고 친한 친구는 부인이 먼저 죽었다. 부인이 죽은 지 벌써 5년도 넘었다.
부인이 먼저 죽은 친구가 두 명이나 된다.
하나같이 옛날 부인과 같이 살던 집에서 혼자 산다.
재혼 안 하느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흔든다.
한국에 나가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면 한국은 좋지만, 한국에서 살기는 싫단다.
한국에 나가지도 않는다.
돈이 없어서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
재혼에 관해서 진지하게 물어보면 자기 재산 보고 오는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혼자 살겠단다.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것도 이골이 나서 뒷마당 텃밭에 농사짓고
김치며 깍두기도 직접 담그고 동태찌개도 잘 끓인단다.
부인을 잃은 늙은 남편은 자신감도 같이 잃어버린다.
자신이 없으니 느는 건 의심뿐이다.
그까짓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 잃을까 봐 의심 가득한 눈망울을 굴린다.
생각해 봐도 알 일이지 어떤 여자가 늙은이와 같이 살겠는가?
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성 간의 문제에서 항상 대범한 쪽은 여자다.
남편 잃고 곧바로 재기해서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여자가 용기있고 발랄해 보인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삶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는데 미국에서 살던 집과 재산은 그대로 놔두고 몸만 한국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 말은 한국에서 죽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이 좋지만, 미국에서 살기는 싫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서 살지만, 한국에서 죽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