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게 수년 전의 일이다.
형님과 함께 백두산 관광길에 올랐다. 단체 여행이어서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갈 때는 북경에서 연길까지 비행기로 갔는데 북경으로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탔다.
다행스럽게도 기차는 침대칸이었다.
침대가 2층으로 되어 있어서 나는 위층에서 자고 형님은 아래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침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앞에 복도가 있다.
각각 침대마다 앞 복도에 동그랗고 조그마한 일인용 의자가 놓여있다.
손님이 24시간 누워서 갈 수만은 없으니까 간간이 일어나 앉으려면 아래 침대 손님은
침대에 걸터앉고 위층 손님은 의자에 앉으라는 의미에서 의자는 하나뿐이었다.
얼마를 달리고 난 후 나는 2층 침대에서 일어나 내려왔다.
막상 내려왔으나 내가 앉아야 할 의자에는 떡하니 어떤 젊은 여자가 앉아있었다.
알지 못하는 여자 손님이 앉아있는데 일어나라고 할 수도 없어서 아래층 형님 침대에
걸터앉아 우리끼리 말했다.
“저 여자는 뭐야?”
“몰라. 중국 여잔데 왜 저기 앉아있지?”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가이드한테서 식사할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사 먹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럴 줄 알고 미리 김밥을 사서 들고 올라왔던지라 가방에서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꺼내
나눠 먹었다. 생수도 마셨다. 밤이라고 해봐야 할 것도 없어서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녹음된 음악이나 듣다가 잠들었다.
날이 훤하게 밝아오기에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자느라고 고요하다.
작은 의자에 앉아있는 중국 여자 역시 쪼그리고 앉아서 자고 있었다.
나는 2층 침대에서 일어나 잠자는 사람 깨울까 봐 조심조심 그것도 조용히 밑으로 내려왔다.
화장실에 들러서 세면도 하고 볼일을 보고 나왔더니 형님이 일어났다.
막상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앉을 자리도 빼앗겼겠다 서서 서성대고만 있었다.
형님이 화장실로 세면이나 하겠다며 가기에 나는 다시 2층 침대로 올라가 누워서 음악이나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형님이 침대로 돌아와서 서성대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아래층 침대를 내려다보았다.
떡하니 젊은 여자가 형님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벌떡 일어나 밑으로 내려왔다. 의아하고 놀랄 일이어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자는 누구야?”
“나도 몰라.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저 여자가 저러고 있어.”
우리는 당황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했다.
마침 옆 침대에서 자던 같은 한국인 관광객 일행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웃으면서 알지 못하는 여자가 남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소연 겸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뭐 체면 봐줄 거 있나요. 그냥 일어나 가라고 하세요. 중국인들 뻔뻔한 거 아시잖아요?”
할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여보세요. 일어나세요. 이게 당신 침대 아니잖아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니면 못 알아들었는지 눈도 뜨지 않는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그 여자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세요?”
눈을 뜬 여자는 낯도 붉히지 않고 일어나면서 ‘뭐. 이런 걸 가지고 야단들이야?’ 하는
식이었다. 일어나더니 무뚝뚝한 특유의 중국인 표정을 지으며 없었던 일처럼 걸어
나갔다.
지켜보던 한국인 일행이 말했다.
“3등 칸은 앉아서 가잖아요. 개중에는 입석으로 승차한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24시간을
서서 갑니까? 그 사람들이 이리로 와서 비집고 앉는 거예요.”
그제야 그 젊은 여자의 돌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서 4시간을 더 달렸다.
얼마 후에 젊은 여자 승무원이 들어서더니 큰소리로 중국말로 뭐라고 했다.
이제 북경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한단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그렇다고 군대 병영처럼 벌떡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꾸물댔다.
젊은 여승무원이 침대마다 돌아가면서 침대 시트를 잡아 재끼는 게 아닌가?
친절하다거나 인정사정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아래층 형님이나 위층의 나나 벗은 채로 노출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벗은 채로 일어나 앉았다.
서둘러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어야 했다.
여자 승무원이 손님을 대하는 서비스나 젊은 여자가 체면 불고하고 남의 침대에 눕는 거나,
참 황당한 경험이어서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아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