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크리스마스 먼동이 트기도 전에 눈이 내린다.
눈은 날이 샜는데도 이어졌다. 하늘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눈은 몇 시간째 쉬지 않고 내린다.
눈 날리는 크리스마스 아침은 조용하다. 지나다니는 차도 없고 걸어가는 사람도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아침을 밤으로 여기나 보다.
어젯밤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6살 때 기다렸던 산타 할아버지는 곤히 잠든 밤에 선물만 놓고 가버렸다.
나는 산타 할아버지를 정말로 믿고 기다렸는데 만나 보지 못했다.
한세상 보내고 난 지금 나는 할아버지다. 손자가 6이나 있는 할아버지다.
기왕이면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할아버지의 대표주자 하면 산타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산타 할아버지는 영원한 할아버지다.
나는 한 번도 산타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지 못했다.
산타는 늘 할아버지여야 한다.
하얗고 긴 수염이 있고 빨간 고깔모자를 쓴 할아버지는 호호호 하면서 웃는 표정이다.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도 나눠준다.
아이들은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나도 할아버지라는 호칭에 익숙하다. 그만큼 늙었다는 징후다.
내게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영원한 할아버지 할머니이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젊은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할아버지 할머니로만 그려질 뿐 어린아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상상이 안 된다.
지금 내게는 손주 손녀가 있다.
손주 손녀는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나 역시 그 애들에게 할아버지가 당연하다.
애들은 나를 할아버지로만 기억한다.
할아버지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영원한 할아버지이다.
영원한 할아버지일진대 좋은 할아버지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타할아버지로 남으면 성공한 할아버지일 것이다.
하얗고 긴 수염도 없고 항상 인자한 모습으로 호호호 웃고 있을 수도 없다.
하지만 친근한 할아버지의 인상을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언제 할아버지가 됐는지 모르겠다.
살다 보니 어느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렸지만 듣다 보니 귀에 익어갔다.
할아버지란 호칭은 얼마나 듣기 좋은 칭호인가?
할아버지보다 더 높은 호칭은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산다.
할아버지는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은 나이여서 마음이 편안하다.
젊어서는 할아버지가 되면 이렇게 평화로우리라는 걸 예상치 못했다.
자존심을 버릴 줄도 알고,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포기할 줄도 알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남들이 위대해 보이고, 남들을 존경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바위가 있으면 돌아가고 돌이 있으면 넘어가는 지혜를 터득하다 보니 늙었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다. 할아버지는 욕망에서 자유롭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회장에게 물어보았다.
“동창 중에 살아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되나?”
“절반은 죽었을 거야.”
할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서 똑바로 걷는다면 다 가진 거다.
손자를 안고 호 호 호 하고 웃는다면 성공한 할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