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옆 ‘할리스’ 커피숍으로 나오라고 했다.
광화문까지 가려면 지하철로 한 시간은 걸린다.
막 집을 나서려는데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순신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내가 서서 이순신을 쳐다보자니 왼쪽이다.
<왼쪽>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생각났다. 친구가 이순신의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하고 물어온 건지
아니면 이순신을 바라보면서 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하고 물어온 건지 헷갈렸다.
전화기 안 들고 다니는 나로서는 친구에게 다시 연락할 길이 없다.
커피숍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순신 동상 옆 화단 돌 벤치 위에 올라서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내가 이렇게 이순신 동상처럼 높이 서 있으니 지나가면서 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기다리면서 이순신 동상 앞 광장을 지나가는 남자란 남자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혹시 눈에 띄면 잡으려고.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못 찾는 것 같았다.
주변에 휴대폰 빌릴만한 사람이 없나 하고 둘러보았다.
젊은 여자가 지하도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서성대고 있다.
얼른 달려가서 휴대폰 좀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았다. 한 통화면 된다고 했다.
요새 젊은이들은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다.
자기가 걸어주겠다면서 전화번호를 내놓으란다.
통화가 이루어지면 전화기를 내게 건네주는 줄 알았다.
전화기 가지고 줄행랑칠까 봐 그러는지 그렇게 쉽게 전화기를 넘겨주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수화기에 대고 전달해 주는 식이다.
아무 건수도 없으면서 그저 만나면 좋은 게 친구다.
친구 못 보고 지난 세월이 10년은 넘었을 것이다.
만나자마자 날 보고 하는 말이 “너도 많이 늙었구나!”
뭐, 뻔한 소리를 하나 했다.
나는 그 친구처럼 대 놓고 말은 하지 않았으나 친구의 얼굴이 함몰되어 보였다.
마치 합죽이 할머니처럼 함몰된 모습.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친구는 치아가 부실해서 공사 중이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인구 감소가 화제로 떠올랐다.
친구는 아이 넷을 길렀다.
딸 둘을 낳고 아들 하나만 더 낳으려고 했더니 쌍둥이 아들이 나오는 바람에 아이가
넷이나 됐다.
아이가 둘이면 됐지, 거기에다가 아들 욕심까지 부렸더니 “옛 다 가져라”하고 쌍둥이를
보내더란다.
둘째 딸 결혼이 늦어져서 걱정하더니 수년 전에 결혼했다. 신부 나이가 42살이었다.
한국은 밖에서 만나는 풍습이 어서 친구네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여자는 인물이 다잖아. 딸이 너를 닮았으면 예쁠 텐데 왜 혼사가 늦어졌어?”
“애는 예쁜데 시집 못 가는 걸 어떻게 하니? 무사안일까지 날 닮아서 그래. 이제 와서
인공수정인가 뭔가 하는데 안 되더군.”
“ 아이를 기르는 게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인데. 나이가 몇인데?”
“마흔다섯.”
“어휴”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둘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사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어.”
“어휴” 소리가 또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