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광장시장에 겨울 바지 하나 사러 갔다.

시골 장터다, 세일이다, 다 다녀 봤어도 광장시장만큼 싼 곳은 없다.

장사꾼들이 여기서 물건을 떼다가 파니까.

겨울 바지는 그런대로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가을 바지는 다 들어가고 없다.

허리 사이즈 32로 겨울 바지 하나 사고, 가을 바지도 달라고 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뛰어가서 한참 있다가 와서 보여주면서 검정 비닐봉지에

얼른 넣어준다.

바지 하나에 만 원씩이니 달러로 치면 8불 50센트에 불과하다. 세금 포함된 가격이다.

 

시장 골목에는 재봉 꾼들도 있어서 곧바로 바지 길이를 줄일 수 있다.

동네 세탁소에다 맡기면 4천 원인 것을 단돈 2천 원(1불 80센트)이면 해결해 준다.

 

‘종로 미싱’ 아주머니를 찾아가 바지 단을 줄였다. 서서 기다리면 즉석에서 줄여준다.

겨울에 찬 바람을 막으려는 아이디어도 발달했다.

재봉질하는 아주 작은 작업실을 통짜 투명 비닐 포장으로 덮어 씌어 있다.

사실 아주머니는 비닐봉지 안에서 일하는 셈이다. 소인국 아가씨를 보는 것 같다.

바람 들어갈 틈도 없다. 전기방석을 깔고 앉아 있으니 아무리 추워도 걱정 없단다.

참 세상 좋아졌다. 그보다 아이디어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지 두 벌이 든 검정비닐 봉지를 들고 시장 골목을 기분 좋게 걸어 나왔다.

 

집에 와서 입어 봤더니 터무니없이 작아 허리가 다치질 않는다.

왜 이런가 봤더니 32라고 싸준 바지가 알고 보니 30이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들고 가서 바꿀 수도 없다. 이미 길이를 잘랐으니까. 약이 올랐다.

세상에 사람을 속이면서 장사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니.

 

속이고 속는 일은 중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데

비애를 느낀다.

중국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중국 여행길에 나섰을 때의 일이다.

여름이었다. 만리장성에 올라가서 구경하는데 어찌나 더운지 패트병 물 한 병을 샀다.

사들로 뚜껑을 따려는데 거저 열린다.

새 병이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투어 가이드가 하는 말이 가짜 물이라면서 가서 물러오란다.

아이고 속았구나! 했다. 그렇다고 멀어져가는 물장사를 쫓아가기도 그렇고….

 

서안 진시황 병마용갱을 방문했다.

길가에 노점상들이 관광 상품들을 늘어놓고 팔았다.

그중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물건은 여우 털가죽이었다.

여우 가죽을 벗겨서 털이 붙어 있는 채로 걸어놓았다.

옛날 여우 목도리가 생각나서 하나 사기로 했다.

장사꾼의 눈치라는 게 얼마나 빠르냐. 내가 살 것처럼 보이니까 가격을 비싸게 불렀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싼 것 같아서 돌아섰다.

돌아섰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다시 다가갔다.

가격이야 깎으면 된다고 하는 생각으로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지면서 재보고 있었다.

아내가 다가오더니 내 손목을 끌어당긴다.

“여우 털가죽 가짜래.”

반신반의하면서 돌아섰다.

“누가 그래?”

“투어 가이드한테 물어봐. 가짜라는 거야.”

그럴 리가 있나 하는 생각에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눈으로 보고 확인했는데 여우 털가죽이 맞던데 무슨 소리요?”

“털을 본드로 붙여놓은 거예요. 여우 사냥이 금지예요. 여우 팔다 걸리면 벌금이 많아요.”

아! 이런 세상이 있나.

진짜 여우 털가죽을 팔면 벌금이고, 가짜 여우 털가죽을 팔면 괜찮다는 게 중국 법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