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국회의원 투표소에 갔다.
의외로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투표소에 투표하러 온 사람들은 모두 젊은이였다.
노인은 나 혼자다.
여기서 젊은이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을 말한다.
나는 미국에서 사는 교포 중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사는 젊은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내 주변에 있는 젊은이들은 미국 시민권자들뿐인데 투표소에 투표하러 온 사람들을 보면
한국 국적인 젊은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이 한국 회사 미국 주재원들 가족인가?
이 사람들이 유학생인가?
이 사람들이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인가?
대통령 선거와는 달리 국회의원 선거니까 뭐 투표하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나 했는데
그게 아니다.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당황했다.
국회의원이야 더불어민주당이냐, 아니면 국민의힘이냐? 둘 중의 하나여서 단순하지만,
비례대표를 찍어야 하는데 정당이 40개나 되니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느 정당에 속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투표소에 가기 전부터 나는 투표소 직원에게 인요한이 속한 정당이 어느 당이냐 물어보고
찍을 요량이었다.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감시하는 젊은이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인요한이 속한 당을 찍으려고 하는데 그 당 이름이 뭐요?”
“여기서 출마자 이름을 거론하는 건 안 됩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이크, 이건 또 무슨 소리냐. 가슴이 뜨끔했다.
나의 귀중한 한 표를 아무 당이나 그냥 찍으라고? 이건 안 되지.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면 잠깐 집사람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안 될까요?”
처음에는 친절하게 전화하란다. 나는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요한이 소속된 정당이
어느 당인지 인터넷으로 찾아봐 달라고 했다. 젊은 감시원이 다가오더니 전화로 출마자
이름을 거론하면 안 된다면서 통화 도중에 끊으란다. 별수 없이 문자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문자로 인요한이 어느 당에 속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데
또다시 젊은 감시원이 다가오더니 이번에는 투표장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끌면
안 된다면서 얼른 찍고 나가라고 독촉 아닌 독촉을 해댄다.
눈치를 보자니 인정사정 봐줄 것 같지 않은 표정이다.
나는 한국인이 이렇게 매정한 줄 몰랐다. 찬바람이 쌩쌩 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쫓겨날 것 같은 기세여서 고분고분 하라는 대로 잘 따라야 했다.
친절이란 눈을 비비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결국 문자 회신도 받지 못하고 투표 박스 안에 들어섰다.
40개나 되는 정당 이름만 읽어보는 데도 시간깨나 걸렸다.
그렇다고 투표 박스 안에서 마냥 시간을 끌었다가는 끌려 나갈 것 같은 분위기여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보다가 국민의 힘과 이름이 비슷한 국민의 미래당에 찍었다.
확인하고 찍은 게 아니어서 께름칙했다.
걸어 나오면서 ‘무엇이 잘 못 됐나?’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네 집에 들렀다.
손주 녀석들을 보지 못한 게 오래여서 어찌들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은 집에 없다. 중학교 오케스트라 팀이 LA 디즈니랜드에 연주하러 갔단다.
오늘 저녁에 돌아온단다.
며느리가 끓여주는 녹차나 마시면서 한국 국회의원 투표하러 왔다가 잠시 들른 거라고 했다.
정당이 40개나 되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인 며느리가 일본에는 정당이 9개여서 복잡했는데 한국은 40개나 되느냐면서 놀란다.
투표용지에 40개나 되는 정당이 찍혀 있다는 걸 외국인들에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게 창피한 건가? 아닌가?
못난 국회의원들 때문에 세계적 웃음거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