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he called constructor method for WP_Widget is deprecated since version 4.3.0! Use
__construct()
instead.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나이테 스물 아홉 줄에 앞선 자의 단상. - 중동 천일야화
나이테 스물 아홉 줄에 앞선 자의 단상.

난 신선한 Rh- 혈액형피 같은 놈이다. 신선해서 유기체에 활력이 되고, 0.1%의 희소성이 있기에 요긴하다.

2007년 9월 13일 이집트 유학 길에 올랐다.말이 길이지 닦여진 길은 없었다. 주위 모든 사람이 좋게 말하면 걱정했고, 솔직히 말하면 비웃었다. 우리나라에선 특수 언어 정도로 치부되는 아랍어를 스물 여섯의 나이에 비전공자가 공부하러 간다고 했으니 말이다. 난 말을 아꼈다. 정해진 틀에 얽매여 고여 썩어서는 안 된다는 신선한 피의 본능에 열정을 품었다. 신선한 피는 뜨거웠다.

철저히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 세가지가 있었다. 열정, 절제 그리고 이상(꿈)은 신선한 피를 0.1% 희소성 있는 혈액형으로 탈바꿈시켰다.

첫째, 열정은 날 현지인으로 만들었다. 도착 첫 날부터 ‘갈라베야’라고 불리는 아랍인들의 전통옷을 사서 입었다. 단언컨대, 최소한 한국인들은 절대 가보지 못했을 이집트인들의 마을과 마을까지 돌아 다니며 새롭고 낯선 존재를 오감하고자 열정을 발산했다.

둘째, 절제는 일관성을 가져다 줬다. 담배를 끊었다. 새벽 5시에 자명종없이 일어 났다. 치장이 많던 생활에 가지치기를 하자 매사에 가속도가 붙었다. 절제는 또 자칫 설익은 열정으로 엇나갈 지 모를 행동거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줬다.

셋째, 이상은 열정과 절제의 방향을 설정했다. 아직은 한국에게 낯설고 생소한 중동, 아랍이지만 정치·경제 등 다방면적으로 알아야 할 지역임은 자명했다. 2천여 년 전 낙타에 돈이 될 물건을 실고 비단길을 오가던 카라반, 대상(大商)이 있었다. 난 21세기의 새로운 카라반을 꿈꿨다. 일반에게 아직 알져지지 않은 새로운 소식과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뉴스 카라반. 나만의 푯대가 세워진 것이다.

‘뉴스카라반’ 이란 이상을 품자 작은 신화와 기적이 작됐다. 열정, 절제의 엔진을 단 고속정(高速艇)이 방향을 잡았다고나 할까. 아랍어를 배운지 정확히 일년이 지났을 무렵 주이집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아랍어 통역원 자격 면접을 봤다. 현지인과 20분간 정치, 문화, 경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합격이었다. 10월과 11월 두 차례 한국 중소기업의 중동시장개척 무역단에서 통역원 역할을 수행했다. 값진 열매였다.

한편, 대학 4년 동안 언론학을 전공으로 하다 보니 기자는 이래야 하고 저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적잖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직한 기자상에 대해 딱히 하나의 개념으로 압축해 설명할 결정체가 없었다. 뜻밖에도 난 이집트 국립 박물관에서 바람직한 기자의 원상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토트’라는 이름의 신이다. 인간의 몸에 길쭉한 부리를 가졌는데, 눈여겨볼 점은 그가 항상 필기구와 파피루스를 들고 다니며 끊임없이 작성한다는 것이다. 세상사의 옮고 그름을 공정히 분석해 꼼꼼히 기록하는게 토트의 역할. 이런 토트를 이집트인들은 언어의 신, 글쓰기의 신으로 여기는데, 난 저널리즘의 신이라고 이름을 내 나름대로 달아 줬다. 엄중하게 관찰하고 따져 물으며 공정한 자료를 냉철히 기록하여 평가 받게 하는 그의 역할이 기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사회를 변화시킬 기관으로 흔히 3개를 꼽는다.법원, 종교 그리고 언론. 아마 역할의 절대적 중요성과 막대한 파급력 때문이게다. 고로, 기자란 우선 충분히 도덕적이어야 한다. 국가의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를 바로 이끄는 견인차의 역할은 절대 부도덕한 기자에서 나올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어떤 상황에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냉정한 머리, 작은 떨림에도 깊은 감성의 파도를 느낄 수 있는 가슴은 충분히 도덕적일 때 주어지는 기자의 핵심 요건이다.

기자의 핵심 요건은 뭐고 난 뭘 꿈꿔야 할지 뭔지 당최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풋내기 때다. 원대한 꿈은 항상 뒷전이었지만 나름대로 회심의 프로젝트를 세워 실천했다. 이를 테면 ‘소개팅에서 어떤 여자와 처음 만나도 세 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이야기하기’ 같은 것. 적잖게 괴짜소리를 들었지만, 난 낯섦이 일단 좋았고 낯섦을 익숙함으로 시나브로 치환시키는 소통과정에 쾌감을 느꼈다. 새로움을 향한 추구는 낯섦을 좋아하게 이끌었고, 낯섦에 대응하는 능력은 소통의 기술을 배우게 했다.

휴…

고루한 오랜 대강당이 이젠 내 대학시절의 낭만의 상징이 되어 버린 요즘. 이 요즘의 시기는 나를 이제 사회라는 거친 망망대해로 내민다. 12월 되어서 나이 얘기 한 번 안하는 사람이 있을까. 스물 여덟 줄의 내 인생의 나이테에 줄 하나가 그어지는 ‘요즘’ 난 나에게 묻는다. "석조야, 이제 마이묵었다 아이가?" 성경에 나오는 ‘Joseph’는 나이 서른에 이집트총리가 되었다는데, 0.1%의 희소성을 가진 썩 괜찮다고 자칭하는 나(놈)는 뭐하나,물음표를 여럿 찍어 본다.

"오 주여. 길을 열어 주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요셉의 나이가 international age로 서른이니 우리 나이론 32쯤 되겠지 하며 내심 여유있다고 안심하는바보같기도 한positive thinker, 노석조.

어째 됐든 오늘 하루도 알차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뛰자! 하하

BLOG_%~1.JPG

이름 노석조

학력 고양초 -> 경기도 연천초 -> 서울 서빙고 초등학교 졸업.

서울 한강 중학교 ->가평 조종중학교 ->용인 중학교

용인 고등학교 -> 서울 대성고등학교

정일 학원(본사)에서 무소속의 설움 속에서 재수(再修).

高麗대학교 언론학부 2010년 2월 졸업.

sudaniya_copy_jjostonebird.jpg

경력

2002-2004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KUBS 기자/보도부장

2003 고려대학교 언론출판협의회 집행부

2002-2003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노래패 ‘Into the Song’ 베이시스트.

2005-2007 1사단 11연대 수색 중대. 비무장지대(DMZ) 경계 및 본부 계원.

2007년 10월 – 2008년 5월 : 이집트 카이로 대학교(다르 엘 올룸)에서 집트 고등교육부 표준아랍어 연수 이수

2008년 2월 – 2008년 5월 : 카이로 미국대학교 (American Univ in Cairo,AUC) 에서 표준 아랍어 이수.

2008년 10월 (10일) : 팬엔터테인먼트 프러덕션의 kBS세계 기행 여행 방송(노홍석PD)의 이집트현지 코디네이터 및 통역원 수행.

2008년10월: kOTRA 경기도 중소기업 이집트시장 개척단의아랍어· 영어 통역원 수행

11월: kOTRA 인천 중소기업 아프리카중동 시장 개척단 아랍어 영어통역원 수행

2008년 6월 -11월 : ARAB-WEST REPORT(인터넷 미디어NGO in Cairo) 인턴 연구원.

2008년 11월 7일간 : 이집트 사막의 마카리우스 수도원 체험.

2008년 12월-2009년 1월 :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터키 배낭여행.

2009년 5월 : 외교통상부, 한-아랍 소사이어티 주관 제2회 아랍문화축전에서 타르 저널리스트 의전 통역.

2009년 6-8월 : 조선일보 제 14기 인턴 기자.

2009년 9월 : 고려대학교 중동 연구 학회 ‘알 미라야’ 창립. 초대 학회장.

이 곳과 저 곳을 잇는 중동 카라반, 돌새 노석조 ; http://stonebird.co.kr

아래 [추천]을 눌러 주시면, 제가 자비로운 누군가에 의해 취업할 수도 있습니다. ;;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