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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나도 독친(毒親)이 될 뻔 했다 - 나는 암이 고맙다
나도 독친(毒親)이 될 뻔 했다

독친(毒親)이란 단어를 최근 조선일보 기획시리즈 기사를 통해 처음 알았다. 영어로 toxic parents, 즉 자녀 인생에 독이 되는 부모라는 의미다. 기사를 읽다보니, 나도 독친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유형이었다. 고학력에, 몇년전까지 내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고,큰 딸에 대해 기대가 아주 컸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큰 딸이 뭔가 큰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다.

큰연못의 가시연꽃(640x432)

천리포수목원의 가을 풍경.

 

물론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을 정도로 들들 볶는 부모는 아니다. 학교까지 달려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고교 2학년인 큰 딸은 늘 모범생이었고(지금도 그런 편이다) 말썽 안 부리는 착한 딸이었기에 기사의 독친 사례로 나오는 부모의 유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딸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학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이 안 좋으면 괜시리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도 잠재적인 독친인 것이다.

기숙학교에 다니는 큰 딸이 지난주말 잠시 외출을 했다. 학교 허락을 받아 방과후 활동의 일환으로 음악회에 가는 김에 잠시 들른 것이다. 중간고사 점수와 순위에 대한 짧은 대화가 오갔다. 난 이미 인터넷을 통해 큰 딸의 점수를 확인했는데, 본인의 입으로 재차 확인하게 해 무언의 압박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주려는 압박이라고 해야 ‘공부하고 시험 칠 때 조금이라도 더 집중하면 성과가 더 좋을텐데 왜 집중을 안 하느냐’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런데 딸의 한마디에 더 이상 압박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맞다. 지는 나보다 더 속이 상하겠지. 누구보다도 잘 하고 싶은 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헛웃음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슬그머니 외출을 했다. 6년전 암 수술을 받은 이후 나는 상황을 쉽게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악착같은 면은 떨어졌는데, 스트레스가 커질 조짐이 보이면 쉽게 단념해버린다. 특히 나와는 상관없이 사안이 흘러갈 것 같은 성격의 일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한다. 내가 아무리 신경을 써도, 근심걱정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큰 딸의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우리 부부는 똑같다. 기숙학교에 맡기고 학업에 관해선 완전히 관심을 끄고 지내는 거나 다름없다. 카톡으로 안부 인사 나누고, 기숙사에 필요한 짐 날라주고, 외박 나오면 편하게 지내다 학교로 돌아가게 방치하는 것.

주변에 수험생이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  수시에서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 어디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는 말을 꽤 듣는다. 내년이면 닥칠 일이라서 완전히 남의 일 같지는 않다. 내년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태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보다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해서, 어떤 인생을 살려고 하는지 디자인을 잘 하는데 더 중요하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이다.

서울대를 나와서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0대 청춘이 취업난에 방황하는 시대다. 고교 3년 내내 공부벌레처럼 책에 매달려도, 일류대학을 들어가도 졸업 후 비슷한 처지라면, 애당초 그럴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냥 즐기는거다. 고교시절도 대학시절에 즐기면서 마음근육을 키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길게 보고,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추구할 수 있는 근육. 내가 독친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강원도 삼척 출생. 강릉고 졸업 -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 졸업. -1991년 조선일보 입사 -2012년 헬스조선 입사. 現 취재본부장 겸 헬스 편집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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