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길 3 / 백운거사 이규보

언젠가조카들과모두모여TV를통해퀴즈게임을보면서

이규보의대표적인작품이무엇인가나왔을때아무도대답하지않은것을

내속에잠재해있던기억인지"동국이상국집"했더니모두가의아한표정으로있다가

이규보의대표작의정답과맞는걸확인하는순간나에게쏟아지는소리우~~~~

"여짓그거기억하는우리이모다"와아,,하면서

조카의부추김에우쭐했던때가있었다.

역사에기리남아있는위대한인물이었기에기억하고있었겠지

그런분을얼마전끝난드라마"무신"에서최충헌의무신정권에

문인의한사람으로아부로협력한지조없는

사람으로그려져저런사람이오늘날에까지

역사에늘등장하는천하의그백운거사이규보란말인가하면서도

낯설었던인물이규보!!!

그이규보의무덤이있는곳으로간다기에

이규보의무덤이왜강화에있지?하면서도착한곳은

인천강화군길상면길직리산115번지에이규보의무덤

몽고에항쟁하기위해고려가강화로천도했을때

최충헌의뒤를이은아들최이밑에서더큰활약을했다고하니

이곳에서생을마감했으면무덤이있는것은당연한것이겠지했다.

그는1168년에태어났고무신난이1170년도일어났다고하니

어려운시기에태어난것만은확실하다

자는춘경(春卿)이요처음이름은인저(仁低)였는데,

벌써아홉살때시를짓는신동으로알려지고,

특히소년시절부터술을좋아했다는기록이있을정도이니

성격또한자유분방했을것도같다

그러나신동이라는별명과다르게나라에서보는시험은

20대초까지합격도하지못하였다고한다

그러던그가진사에합격뒤당시최고의권력자최충헌에게기용되어

문하시랑평장사에이르렀다고하면문인으로선높은자리에까지올랐다는것인가???

이규보는몽고의침략과원의간섭을심하게받던시기에

우리민족이오랜역사와고유한문화전통을지나고있음을강조하기위해

"동명왕편"에서고려의국가질서회복을기원하기위해

고구려시조동명왕의신비로운탄생과건국과정을서사시에

민족정신에바탕을두고고려가고구려를계승하였다는긍지를나타냈다.

몽고군의침입으로강화도에천도해서대장경을만들때

민족수호의충정이담긴"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을지었고

동국이상국집과백운소설등은모두고대사연구에좋은자료가되고있다고한다.

굳건히잠긴사당문이기둥들이벗겨진것인지썩은것인지

사당을지키는집이앞쪽에있는듯보이니

손질이전혀되어있지않은유적지로남아있는듯했다

대개의우리나라의사당문은3개문으로이루어져큰문과작은문두개이다

큰문은제사지낼때나높은분이오실때열어놓는다나

두개의양쪽문은한쪽으로들어가서한쪽으로나온다는것으로

서로드나들때의부딪힘이없게하려는것이었겠지

사당문에서산소쪽으로오르다앞쪽맞은편을바라보니

역시이곳에모신이유가있었구나하는생각이들다

옛분들의지혜로여기도풍수지리에딱들어맞는장소인것같았다

우선시야가시원하게펼쳐져있어요

와아~~~글씨좀봐

이건분명히강화도에서행세한다고하는

원님중하나가쓴글임에틀림없는것같다

고려최대의문장가비문에써있는글씨치고너무하다는생각이들다

‘영정중월(詠井中月)’(샘속의달을노래하다)

-이규보-

山僧貪月光
산승이달빛을탐하여

甁汲一壺中

병속에물과함께길어담았네

到寺方應覺
절에다다르면바야흐로깨달으리라

甁傾月亦空

병기울이면달빛또한텅비는것을

(청청한달빛아래에서의운치가가슴에와닿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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