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중한문화재를많이잃었다.
1252년제6차의침입을받았을때는남녀무려약2십만6천8백명의포로를내고,
태자(太子)의입조를약속하였다.이로써고려는사실상몽골에굴복했다.
1258년동북지방에쳐들어온몽고군에게조휘와탁청이투항하면서
철령이북지역이몽고의쌍성총관부의지배하에놓이게되었다.
문화발전에힘써,팔만대장경을간행케하고,유학을장려하는등문화적업적을남겼다.
특히팔만대장경은원나라의침략을부처의힘으로격퇴하기위하여간행하였다.
능은강화의홍릉(洪陵)이다.
고종(高宗,1192년~1259년)은고려제23대국왕(재위:1213년~1259년)이다.
휘는철(皞),자는천우(天祐),시호는고종충헌안효대왕(高宗忠憲安孝大王).
강종과원덕태후(元德太后)유씨(柳氏)의맏아들이다.
비(妃)는희종의딸안혜태후(安惠太后)유씨(柳氏)이다.몽골에서내린시호는충헌왕(忠憲王)이다.
최충헌의적(嫡)매형이자사돈간이기도하다.
최충헌은부왕강종의서녀와재혼하였는데,아들원종의장인김약선은최충헌의아들최우의사위였다.
1213년부터1259년까지재위하는동안실권을갖지못하였으며
1213년부터1219년까지최충헌(崔忠獻)이실권을맡았고
1219년부터1249년까지최이(崔怡)가실권을맡았으며
1249년부터1257년까지최항(崔沆)이실권을맡았고
1257년부터1258년까지최의(崔竩)가실권을맡았으며
1258년부터1259년까지김준(金俊)이실권을맡았다.
강화서문
고려궁터에서내려와하점리방향으로약500m진행하다보면첨화루라는서문을만날수있다.
이서문은겹처마팔짝지붕으로고목나무와더불어아름다운누각이다.
성벽따라걸어도봤으면하는아쉬움이남는곳이다.
고려충정왕3년(1351년)제위3년만에기(공민왕)에게양위하고
서문밖용장사에기거했다는기록이있는곳으로
용장사라는절이있었다고추측하는저수지로
왜적들이침입해서자취도없이몽땅
불태워없애버린곳이라는기록만이있는곳이다
너른저수지로되어있는용장사라추정되는이곳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