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길 2 / 전등사

한여름일본역사문화탐방이라는이름을걸고일본을다녀오고나서

우리의역사문화는얼마나봤느냐는물음이내게생겼었다

그러던중아는지인이해설자앞세우고문화역사기행에나선다하기에

얼떨결에따라나선길,,강화도였다.

우리나라의단군신화부터근대초기까지의수많은사건이

이작은섬에서있었다는이야기를듣는것이새롭게여겨지는것은

예전에아이들을몇번이나데리고갔었어도그저바람쐬러가는드라이브길로만

생각했기때문이였다란것이이번강화도를돌면서느낀것이였다

이렇게많은역사가널려있는곳을!!!.

초지진을지나차로잠시이동한후도착한곳이전등사

전등사입구에서가파른계단으로오르다가양쪽무질서하게들어선가게들을지나

언덕길을조금걷다보니삼랑성이라고도하고

정족산성이라고하는성곽이나오는데이곳은동문!!!

14,삼랑성

정족산성이라고도하는삼랑성을쌓은연대는확실히밝혀진것이없으며

단지단군이부여,부소,부우인세아들에게성을쌓게했다는데서전설에서유래했다고해서

삼랑(三郞)즉세아들을뜻한다고한다.

성곽을쌓은연대를확실히알수는없으나

성곽이쌓여져있는모습이충청북도보은의삼년산성이나경주의명활산성처럼

삼국시대성의구조와비슷하다하여삼국시대로추정하고있단다

이삼랑성안에는전등사외에

고려시대에는지었었다는가궐(假闕)의빈터도있고

조선시대에는있었다던사고와선원보각도복원이되어있었다.

동문인돌로된성문을지나니맨처음보이는것은

양헌수의승전비와안내판이바로보였다

병인양요때프랑스군을물리친양헌수의공적을기리기위한것으로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로

순무는"순회하며백성을위로한다"라는뜻이고

천총은양헌수의조선후기정3품에해당하는무관직책이다.

죽림다원

아기자기한다기들과차와여러가지소품들의볼거리가많은곳으로

일정에쫓기지만않았다면한없이앉아있고싶을정도로의예쁜다원으로

아마도무르익은가을이라면단풍에한결아름다운정원일듯한

이곳의건물이

옛날에는승병들의초소였다고한다.

지금의다실로쓰고있는이곳에서의국화차한잔의향기는

아직도기억을새롭게한다.

죽림다원근처에있는해태는사뿐히즈려밟고건너가라는뜻인가본데

돌다리가있는것으로보아여긴계곡물이흐르는곳인데

이곳은눈여겨보지않았으면그냥지나칠뻔했던해태다리였다.

전등사곳곳은완전역사의보물이널려있는듯했다,

윤장대

윤장대란책장의일종으로불교에서

경전을넣는책장을돌리면경전을읽는것과같은공덕을쌓을수있다고한다

불도를믿으려하나글을읽지못하거나불경을읽을겨를이없는사람들을위하여

만들었으면한번돌리면경전읽는것과같은공덕이생긴다는것이다

이곳도해설자의해설이없었으면그냥치나칠뻔했던곳!!!

381년고구려소수림왕때아도화상에의해창건된

우리나라에서는기록상으로가장오래된절이라고한다.

창건당시에는진종사(眞宗寺)라하였으나

고려충렬왕의妃인정화궁주가玉燈을

이절에헌납한이후전등사(傳燈寺)라고불렀단다.

선운사지박물관에있는옥등

대조루(對潮樓)

전등사현판있는곳을지나면쳣번째보이는누각인대조루이다.

전등사의남동쪽으로는멀리강화해협이내려다보이므로

바다가바로앞에대하듯보인다는의미에서대조루(對潮樓)라이름지었단다

대조루의초창연대는확실치않으나상량문의기록에의하면

1749년(영조25)에총섭초윤이개수하였다하고

1841년에총섭연흥이중수하였다고한다.

종무소의한쪽끝에는있는선물가게.

전등사의대표적인법당인대웅보전은그자체만으로도

조선중기의건축양식을보여귀중한문화유산이란다.

어느절이나전각기둥에는글씨가쓰여있다.

기둥이나벽에세로로써붙이는글씨를주련柱聯이라고하는데.

이곳전등사는모든전각주련아래우리말설명을써놓았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

(부처님은온누리에두루계시어)

月印千江一切同월인천강일체동

(천개강에달그림자비춤과같이)

四智圓明諸聖士사지원명제성사

(모든지혜원만하신성인들이)

賁臨法會利群生분림법회이군생

(법회마다오셔서중생들을널리이롭게하시네)

석가모니를모신법당에처마끝의벌거벗은여인이

지붕을떠받치고있는조각상이있다고해서뭐가???하면서보니

사람의모양인지짐승의모양인지가정말보이는거였다.

처마끝하나라도세심히관찰하지않으면그냥지나칠수도있었던것을

신기하기도하지!!!

벌거벗은여인상이아니고원숭이라고하는사람도있으나

여인으로보기도그렇고원숭이로보기도그렇고

해설자의이야기를들어보니

아마도미움이서린나부상임엔틀림이없는것으로생각이들었다

주막을드나들다주모와사랑에빠진도편수는대웅전공사가다끝나는대로

살림을차리기로약속한주모에게돈이생기면다갖다맡겼었다고한다.

어느날주모는돈만챙기고도망을갔고

사랑을배신하고도망간주모에게벌을주고싶은마음에

대웅전처마끝에여인상을깎아만들었다는이야기가전해온다

재물을잃은목수가주모의나쁜짓을경고하고죄를씻게하려고

발가벗은모습을조각하여추녀를받치게하였다는것이다,

더욱흥미로운것은3곳의처마밑에서는

두손으로처마를받치며벌을받고있는모양인데

한귀퉁이의것은한손으로만처마를받치고있다는점이다.

팔에힘이빠지면한손으로,,번갈아처마를들어올리고있다는것이

마치벌을받으면서도꾀를부리고있는듯한모습으로도보이고

그당시사람들의해학적인의미가들어있는것같아

옛문화의흔적을본다는재미솔솔하네…

(도편수란전통한식기법으로한옥,누각,사원,사찰,궁궐등의목조구조물과

문화재의건립및복원하는한식목공을관리·감독자)

청동수조

이것도고려충렬왕의妃인정화궁주(貞和宮主)가시주한것으로전해진다

청동수조는불을끄기위한것으로물을항상담아두었다가긴급할때사용하였단다

공중에떠다니는불귀신이불을일으키러큰건물을골라서다니다가수조안에있는물에

비친자신의흉악한몰골을보고는동료가불장난하러와있는줄알고

다른곳으로옮겨갔다는전설이있다

종루

명부전,약사전,향로전

오래된느티나무가

전등사마당한가운데자리하고있는것이

이느티나무를중심으로해서곳곳에구조물들을배치해놓은듯했다

전등사은행나무

600세가넘는나무로키는30m둘레는8m의암나무였으니조선조말엽에

조정에서의공출해야하는것에그수를채우기어려워

스님들이아예열매를맺지않는수나무로변하는기도를올렸고그스님들덕분인지

은행나무는은행을더이상수확량을알수없는수나무로바뀌었다고한다믿거나말거나…ㅋ

범종

범종(梵鐘)보물제393호

이곳의종은우리나라종이아닌중국종이기때문에

전통적인우리의것과는차이가있다고한다.

우선동종이아닌철종이고소리자체도우리의것과다르다고한다.

7번,극락암((極樂庵)

범종각바로앞에있는커다란찻잔모양같기도하고

종을뒤집어놓은것도같은물먹는곳을

돌로깎아만든것이다른곳과는달라보여신기했다

23,설법전

스님들의경전강의나설법들이행해지는곳을설법전,혹은법당이라도고부른다는데

일종의강당역할이겠지

문앞엔템플스테이라는돌탑이세워져있었다.

뒤로돌아가니햇볕을막기위한발도운치있게보이는것이

눈길을끈다.

20,정족사고

1628년(인조6)조정에서는

강화도마니산에새로사고를설치하여묘향산사고에보관했던전본을옮겼다가

1660년강화도정족산전등사안에선원각과장사각을짓고

유일하게보존된조선왕조실록전주사고본을봉안하였단다

1870년작성된지도(펌)

1910년한일합정이후정족산실록은

태백산실록과왕실도서관인규장각도서등과함께조선총독부학무국으로옮겨졌고

본래정족산사고는1931년무렵주춧돌과계단석만남긴채없어졌었던이곳을

1870년작성된지도에보이는정족진관련건물유적들이

정족산발굴결과대부분확인되어1999년건물들을복원하였단다.

왼쪽의건물은"장서각"이

오른쪽은"선원보각"이라는현판이걸려있는건물

.

정족사고의문안쪽에서바라본강화

24.가궐지예상지역

설법전을뒤로해서걷다가왼쪽으로돌아조금오르다보면

무성한풀밭이나오는이곳이바로

"고려사"에나오는고려고종이정족산성안에가궐을짓게명하여

지었다고하는곳이란다.

고려왕실에서유사시에궁궐로쓸생각으로가궐을지었다는기록이남아있어

당시의유물이나오는것으로고려가궐지가있던장소로추정하고있단다..

강화도의전등사라면마니산에있는줄알았는데

이번에확실히안것은전등사는정족산에위치하고있다라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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